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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의 이해와 한반도의 고대 문화

신석기 시대의 이해와 한반도의 고대 문화
신석기 시대의 이해와 한반도의 고대 문화

신석기 시대는 인류 문화의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내는 시기로, 구석기 시대의 뗀석기 사용에서 한 단계 진화하여 간석기를 사용하게 된 시대를 말합니다. 이 시대는 대략 기원전 1만 년부터 기원전 1500년까지로 추정되며,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고 농경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생활 양식을 발전시킨 중요한 시기입니다.

 

간석기 또는 마제석기(磨製石器)
간석기 또는 마제석기(磨製石器)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구분 기준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는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나타내는 두 시대입니다. 이 두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주로 도구 사용법, 생활 방식, 그리고 사회적 조직의 발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간석기
간석기

 

도구 사용법의 변화

구석기 시대는 주로 뗀석기, 즉 돌을 깨뜨려 만든 도구를 사용했던 시대입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도구로는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이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사냥과 채집 생활을 했습니다. 반면, 신석기 시대는 간석기, 즉 돌을 갈아서 만든 도구들이 등장합니다. 이 시대의 도구로는 돌삽이나 돌괭이 등이 있으며, 농경 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변화를 나타냅니다.

간석기는 날 부분 또는 표면 전체를 갈아 만든 석기로, 마제석기(磨製石器)라고도 하는데요. 신석기시대 후기에서 청동기시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간석기 또는 마제석기(磨製石器)

 

생활 방식의 전환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주로 이동 생활을 하며, 동굴이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는 사냥할 동물과 채집할 식물이 소진되면 새로운 지역으로 이동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석기 시대에는 기후가 안정되고 농경이 시작되면서 정착 생활을 하는 사회로 전환됩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움집을 짓고 씨족 중심의 부족사회를 형성하며, 농사, 사냥, 그리고 가축을 기르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씨족 중심의 부족사회 - 움집

 

사회적 조직의 발전

구석기 시대는 빈부차이나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였으나,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사회적 조직이 더 복잡해지고 발전합니다. 신석기 시대의 사회에서는 경험이 많은 부족장이 생산 활동을 지휘하며, 씨족들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몇 개의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루는 등의 사회적 구조가 나타납니다.

 

신석기 시대의 가락바퀴와 뼈바늘 - 고대 수공업의 발달

신석기 시대는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중요한 시기로, 다양한 도구와 기술이 등장하며 생활 방식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특히 가락바퀴와 뼈바늘은 이 시대의 수공업 발달을 상징하는 중요한 발명품입니다.

가락바퀴 - 방직의 시작

가락바퀴는 신석기 시대부터 사용된 방적구로, 실을 꼬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이 도구는 중앙에 구멍이 뚫린 원형의 돌이나 흙으로 만들어졌으며, 막대를 중심축으로 사용하여 섬유를 감아 실을 만드는 방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가락바퀴의 발명은 신석기인들이 자연에서 얻은 섬유를 활용하여 옷감을 짜고, 보다 정교한 의복을 제작할 수 있게 한 중요한 기술적 진보였습니다.

 

가락바퀴(충북 청주 산성동)

 

가락바퀴 사용 복원

 

뼈바늘 - 재봉의 기술

뼈바늘은 사냥으로 얻은 동물의 뼈를 가공하여 만든 재봉 도구입니다. 이 바늘들은 옷을 만들거나 수선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보다 세밀하고 복잡한 의복을 제작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뼈바늘의 사용은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이 의복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했음을 보여줍니다.

 

가락바퀴와 뼈바늘

 

함경북도 웅기군 서포항 신석기시대 주거지에서 발견된 토제 가락바퀴와 뼈바늘·뼈바늘통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부터 계속 실을 잣고 직물을 재직하였음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조개 껍데기 가면(인천 옹진 소야도)

 

 

수공업의 발달과 사회적 변화

가락바퀴와 뼈바늘의 사용은 신석기 시대의 수공업 발달을 촉진했습니다. 이러한 도구들은 옷감과 의복 제작뿐만 아니라, 그물과 같은 다른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도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사회에서 생산과 노동의 분화가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며, 전문성과 기술의 발전을 촉진했습니다.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실을 짜는 모습
가락바퀴와 뼈바늘로 실을 짜는 모습

 

한반도에서의 신석기 시대

한반도에서의 신석기 시대는 특히 흥미롭습니다. 초기에는 B.C. 5000년 무렵으로 개시 시점을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으나, 최근 제주도 고산리 유적과 관련하여 1만 년 전으로 소급시키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는 고산리 유적에서 출토된 초기 토기와 석기를 통해 추정되는 것으로, 신석기 시대의 시작을 더욱 앞당길 수 있는 중요한 발견입니다.

제주도 고산리 유적

 

한반도 신석기 시대의 도구와 그 의미

한반도의 신석기 시대는 인류 문화와 기술 발전의 중요한 시기로, 다양한 도구들이 사용되었습니다. 이 시대의 도구들은 생활 방식의 변화와 기술의 발달을 반영하며, 당시 사회의 구조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간석기의 사용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도구간석기입니다. 이는 돌을 갈아 만든 도구로, 농경과 생활에 필수적인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돌괭이와 돌삽은 농사를 짓는 데 사용되었고, 돌보습과 돌낫은 수확에 활용되었습니다.

 

 

골각기(骨角器) 만들기

골각기(骨角器) : 짐승의 뼈나 뿔로 만든 도구. 구석기·신석기 시대에 동물이나 생선을 먹은 뒤 뼈나 뿔을 재료 삼아 바늘, 송곳, 낚시바늘, 작살, 창끝, 도끼 등과 장신구나 의례용 도구도 제작하였다.

 

토기의 발달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유물로, 초기에는 융기문 토기가 주를 이루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뾰족한 바닥의 포탄형 빗살무늬 토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토기들은 저장과 조리, 식사에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문양과 형태가 발견되어 당시의 예술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움집(서울 강동 암사동)

생활상의 변화

신석기인들은 주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면서 창, 활, 결합식 작살, 그물 등 발달된 장비로 고기잡이와 사냥을 했고,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신석기 시대의 경제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왔으며, 통나무를 깎아 배를 만들어 강이나 가까운 바다를 이용해 이동하는 기술도 발달했습니다.

 

부산 동삼동 패총

패총은 선사시대에 인류가 먹고 버린 조가비와 생활쓰레기가 쌓여 이루어진 것으로 조개더미 유적이라고 한다. 이곳은 동삼동 바닷가 언덕 비탈에 위치하며 신석기 시대 전 기간에 걸쳐 쌓인 층이 드러난 곳이다. 층위는 5층이며, 이곳에서 석기, 짐승뼈, 조가비들로 된 살림살이 유물과 농사짓는데 쓰이는 연장이 나왔다. 문양 없는 원시무문토기,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인 빗살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신석기 이른 민무늬 토기, 원시무문토기

 

 

신석기 시대의 애니미즘과 그 문화적 의미

신석기 시대는 인류 문화의 발전에서 중요한 시기로, 이 시기에는 애니미즘과 같은 원시 신앙이 등장합니다. 애니미즘은 자연물에 영혼이나 정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신앙으로, 신석기인들의 자연과의 깊은 연결을 반영합니다.

애니미즘

애니미즘의 기원과 신앙

애니미즘은 라틴어 'anima'에서 유래한 용어로, '영혼'을 의미합니다. 신석기 시대의 사람들은 농경과 밀접한 자연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고, 자연물이나 자연 현상, 특정 동식물, 영혼 등을 숭배했습니다. 이러한 신앙은 동물 모양을 새긴 조각, 얼굴 모양의 토기, 조개껍데기 가면 등을 만드는 문화적 표현으로 나타났습니다.

애니미즘의 문화적 표현

신석기 시대의 애니미즘은 예술과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하학적 양식의 예술이 등장하며, 자연주의적 경향이 물러나고 모든 것을 기하학적 무늬로 양식화하는 경향이 지배하게 됩니다. 이는 체험과 경험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사물의 이념이나 본질을 포착하려는 예술적 시도로 볼 수 있습니다.

애니미즘과 사회 구조

애니미즘은 신석기 시대의 사회 구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운명이 일정한 섭리와 의도를 지닌 힘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는 종교적 사고와 예배 행위의 등장으로 이어지며, 사회의 모든 정신생활을 종교와 예배 중심으로 영위하는 경향을 나타냅니다.

기후와 생활 양식

신석기 시대의 기후는 빙하기가 끝난 후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며, 현재와 유사한 기후 조건에서 인류는 더 많은 유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에는 주로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가 이루어졌으나, 중기에 들어서면서 초기 농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주거지, 패총, 야외 유구, 매장 유적 등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경의 시작과 발전

신석기 시대의 농경은 주로 집 근처의 작은 텃밭이나 강가의 퇴적지에서 이루어졌으며, 주요 농기구로는 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 등이 사용되었습니다. 농경 기술의 발달은 사냥과 고기잡이의 비중을 점차 줄여갔지만, 여전히 중요한 식량 획득 수단이었습니다.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

주거와 유물

주거 형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형이나 방형에서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변화하였으며, 유물로는 수렵구, 어구, 농공구, 장신구, 예술품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토기는 전기에는 융기문 토기가 주를 이루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뾰족 바닥의 포탄형 빗살무늬 토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신석기 시대의 도구와 미술품

신석기 시대는 인류 문화의 발전에서 중요한 시기로, 다양한 도구와 미술품이 등장했습니다. 이 시대의 도구들은 생활 방식의 변화와 기술의 발달을 반영하며, 미술품들은 당시 사람들의 정신세계와 신앙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도구의 발전

신석기 시대의 주요 도구로는 간석기와 토기가 있습니다. 간석기는 돌을 갈아 만든 도구로, 농경과 생활에 필수적인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예를 들어, 돌괭이와 돌삽은 농사를 짓는 데 사용되었고, 돌보습과 돌낫은 수확에 활용되었습니다.

융기문 토기

토기는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물로, 초기에는 융기문 토기가 주를 이루었으나, 중기 이후에는 뾰족한 바닥의 포탄형 빗살무늬 토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이러한 토기들은 저장과 조리, 식사에 사용되었으며, 다양한 문양과 형태가 발견되어 당시의 예술적 감각을 보여줍니다.

 

미술품의 다양성

신석기 시대의 미술품은 주로 토기의 문양, 토우(土偶), 석우(石偶) 등으로 나타납니다. 토기에는 기하학적인 무늬나 동물 무늬 등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신앙과 관련이 깊습니다. 토우와 석우는 주로 여신상이나 동물상으로,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빗살무늬토기
빗살무늬토기와 빗살무늬토기 속 상징

한국에서 발견된 신석기 시대의 미술품 중 하나는 암사동 출토 빗살무늬 토기로, 이는 신석기 시대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또한, 목걸이와 같은 장신구나 비너스상, 새조각상 등도 발견되어, 당시의 예술적 표현과 장식적 용도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신석기 시대는 각 지역마다 토기를 기준으로 편년이 나뉘지만 크게 3가지로 나누자면, 융기문토기의 전기, 침선문(= 빗살무늬 토기)의 중기, 민무늬의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각 시대 토기로 엄격하게 구분되어 나오지는 않고, 토기 내에서도 다양한 구분과 변형이 존재한다. 흔히들 신석기 시대의 토기로 아는 포탄형의 빗살무늬 토기는 중서부 지역에서 등장하는 토기이다. 그 외의 토기는 대부분 평평한 바닥을 띠고 있다. 세계 각 지역에 따라 다양한 형태와 양식의 토기가 존재하며, 이미 원시적인 형태의 문화 공동체가 형성되었음을 나타내는 하나의 예시가 되고 있다.

 

결론

신석기 시대는 인류 문화의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로, 한반도에서의 유적과 발견물들은 이 시대의 다양한 측면을 조명해줍니다. 이 시기의 연구는 고대 인류의 생활, 기술, 사회 구조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하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