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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비우스 학설 붕괴 - 고고학의 새로운 전환점

모비우스 학설은 우리에게 구석기 시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이론 중 하나입니다. 이 블로그 포스트를 통해 모비우스 학설의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모비우스 학설 붕괴
모비우스 학설 붕괴

모비우스는 동아시아 지역에는 주먹도끼가 없으며, 그 대신 찍개가 중심을 이루는 구석기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 이론은 양날식 양식의 구석기가 나오는 아프리카나 유럽에 비해 아시아는 석기 제작 기술이 떨어져 외날식 양식의 구석기만 나온다는 것이었다. 1978년 경기도 연천 전곡리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나오기 전까지는 모비우스의 이론이 지배적이었다.

모비우스 학설의 개요

모비우스 학설은 1948년 하버드 대학교의 고고학자 H. L. 모비우스에 의해 제안되었습니다. 그는 구석기 문화가 특정 지역에서의 도구 사용 방식에 따라 두 가지 주요 문화권으로 구분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이론은 당시의 고고학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고고학에서도 여전히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모비우스의 연구 배경

모비우스는 인도와 동아시아 지역의 고고학적 자료를 바탕으로 이 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그의 연구는 당시의 문화적 교류와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여 이루어졌으며, 이는 후속 연구자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모비우스는 주먹도끼 문화와 찍개 문화라는 두 가지 문화권을 설정하고, 이들 간의 차이를 명확히 제시했습니다.

모비우스 라인의 정의

모비우스 라인은 주먹도끼 문화가 주로 서쪽 지역에서 발견되며, 동쪽에서는 찍개 문화가 우세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경계선입니다. 이 라인은 유럽과 아시아의 고고학적 경계를 가리키며, 구석기 시대의 인간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모비우스 학설의 주요 내용

모비우스 학설의 핵심은 도구 제작 기술의 차이에 있습니다. 서쪽 문화권에서는 주먹도끼와 같은 대형 도구가 발달했으며, 반면 동쪽 문화권에서는 작은 찍개 도구가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는 각 지역의 환경적 요인과 문화적 배경을 반영하는 결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모비우스 학설의 한계

하지만 모비우스의 학설은 여러 가지 한계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이론이 특정 지역에 국한되어 있어 다른 지역의 문화적 변화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합니다. 둘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고고학적 발견이 이루어지면서, 모비우스 라인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습니다. 이러한 한계점은 후속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모비우스 학설에 대한 비판

모비우스 학설에 대한 비판은 다양합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아시아 지역에서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견되므로, 모비우스 라인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또한, 각 지역의 문화적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도구의 형태만으로 문화권을 구분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러한 비판들은 모비우스 학설이 고고학 연구에서 보다 유연하게 적용되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현대 고고학에서의 모비우스 학설의 위치

오늘날 모비우스 학설은 고고학적 연구의 중요한 이론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비록 비판이 존재하지만, 이 이론은 구석기 시대 도구 사용 문화의 차이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유용합니다. 고고학자들은 모비우스 학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연구를 진행하며, 문화 간의 상호작용과 교류를 탐구하고 있습니다.

연천 전곡리유적
연천 전곡리유적(사적 268호)

연천 전곡리유적(사적 268호)

전곡리유적은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의 한탄강 언저리에 넓게 위치하고 있다. 이 유적의 발굴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이루어졌고, 그 후 1986·1991년 2차에 걸쳐 추가조사가 실시되었다. 이 유적은 아주 방대하고 훌륭한 석기들이 출토되어, 우리 나라는 물론 아시아 구석기학자들에게 큰 관심을 가지게 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 출토되고 있는 아슐리안계 주먹도끼는 북부아프리카의 상고안(Sangoan)유물과 비교되고 있으며 제작기법이 매우 독특하여「전곡리문화」로 주장되고 있다. 그런데 보고자들은 유적의 퇴적원인, 당시의 기후, 문화층의 문화내용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면서, 유적의 연대에 대해서는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각기 다르게 보고 있다.

1978년 4월 미군 병사 그레그 보웬 Greg L. Bowen은 한탄강변을 산책하다 묘하게 생긴 돌덩이 하나를 발견했다. 보통 사람들 눈에는 평범한 돌덩이에 불과했지만 선사고고학에 밝았던 보웬은 그냥 넘기지 않았다. 한눈에 '아슐리안 주먹도끼 Acheulean hand axes'임을 알아차린 그는 그 돌을 챙겨와 프랑스의 고고학 권위자에게 편지를 보냈다.

프랑스 교수의 소개를 통해 서울대 교수에게 유물을 보내어 조사를 요청했는데, 그 돌이 약 30만 년 전 것이라고 추정된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물인 '전곡리 주먹도끼'로 밝혀진 것이다. 서울대학교박물관은 전곡리 일대에서 유물 4500여 점을 획득하였다.

전곡리 유적과 모비우스 학설

특히, 전곡리 유적은 모비우스 학설의 중요한 사례로 언급됩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다양한 도구들은 기존의 모비우스 라인 이론을 넘어서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전곡리 유적은 모비우스 학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구석기 시대의 복잡한 문화적 양상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자료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마무리 및 향후 방향

모비우스 학설은 고고학 연구에서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의 도구 사용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모비우스 학설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폭넓은 시각에서 구석기 시대 문화를 탐구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새로운 발견과 연구가 이루어질수록, 우리는 인간의 역사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이 모비우스 학설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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