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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능산리 고분군: 백제 사비시대 왕들의 안식처

부여 능산리 고분군
부여 능산리 고분군 ❘ 출처: 한국 저작권 위원회

 

1. 능산리 고분군 개요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위치한 백제 왕족의 무덤군으로, 사적 제1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사비도성 외곽에 자리하고 있으며, 7기의 주요 고분과 주변의 동·서고분군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고분 내부에서는 사신도 벽화와 금동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인근에 있는 능산리사지 절터는 왕릉을 지키는 사찰로 추정됩니다. 이로 인해 백제 왕의 무덤으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되었습니다.

 

2. 고분의 발견과 역사적 배경

일제강점기 발견과 조사

능산리 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5년에 구로이타 가쓰미와 세키노 다다시에 의해 처음 발굴되었습니다. 이들은 부여 사비도성 인근에서 왕릉급 고분 6기를 발견하고 각각 동하총, 중하총, 서하총 등으로 명명했습니다. 이후 1971년의 복원 작업 중 추가로 7호분이 발견되었으며, 8호분까지 포함하면 총 8기의 고분이 존재합니다.

백제 왕릉의 계획적 배치

능산리 고분군은 나성 외곽에 정렬된 구조를 보여주며, 고분군 근처에 있는 능산리사지 절터가 고분과 깊이 연관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백제 도성의 설계 단계부터 왕릉의 위치가 의도적으로 계획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고분군이 도성 밖에 위치한 것은 사비도성 내에서 왕과 신하의 공간을 분리한 결과로 보입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 출처: 한국 저작권 위원회

 

3. 고분의 구조와 사신 사상

고분 구조의 특징

능산리 고분군은 대개 직경 20~30m의 원형 봉토분으로 구성되며, 내부는 횡혈식석실분 형태입니다. 널길을 통해 무덤 방으로 들어가며, 이 석실 구조는 '능산리형 석실'로 불릴 만큼 표준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천장의 형태는 볼트형, 육각형 평천장, 사각형 평천장으로 구분됩니다. 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백제 무덤의 건축 양식이 변화한 것을 반영합니다.

사신도 벽화의 의미

특히 능산리 1호분의 내부 벽면에는 사신도가 그려져 있어 유명합니다. 사신도는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를 그린 벽화로, 고대 중국에서 전래된 사신 사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벽화는 송산리 고분군에서도 발견되며, 백제의 예술적 특징을 잘 보여줍니다.

 

부여 능산리 고분군 ❘ 출처: 한국 저작권 위원회
부여 능산리 고분군 ❘ 출처: 한국 저작권 위원회

 

4. 능산리사지와 고분군의 연관성

능산리사지의 발굴과 역사적 의미

능산리사지는 고분군과 불과 100m 거리 내에 위치한 절터로, 왕릉을 수호하는 사찰인 능사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 전형의 1탑 1금당식 가람배치가 확인되었으며, 567년 위덕왕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백제금동대향로

주요 유물: 백제금동대향로와 석조사리감

능산리사지에서는 국보 제287호인 백제금동대향로와 국보 제288호 석조사리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유물들은 백제의 높은 공예 기술과 불교적 신앙을 보여주며, 절터의 동·서·북쪽을 둘러싼 배수로와 온돌 시설 등은 백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입증합니다.

 

 

5. 결론

부여 능산리 고분군은 백제 왕들의 안식처이자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 유적입니다. 고분군과 능산리사지의 연계성을 통해 백제 왕실의 종교적 신앙과 예술적 성과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고분군은 백제 왕권의 상징이자 사비시대 문화의 결정체로서, 역사적 연구와 보존이 계속되어야 할 중요한 유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