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연등회(燃燈會)는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불교 행사로, 팔관회와 더불어 국가적 규모로 설행된 국행 의례였습니다. 불교에서 비롯된 이 연등회는 신라 시대에 시작해 고려에 이르러 정기적인 국가 행사로 자리잡았습니다. 고려 왕실과 백성이 함께 참여한 이 행사는 국가 의례 중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사회적 통합과 정치적 목적을 동시에 추구했습니다.
2. 연등회의 기원과 의미
연등회의 기원은 인도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불교에서는 등불을 지혜와 깨달음의 상징으로 삼았으며, 이는 개인적인 공양 행위에서 집단적 불교 행사로 발전했습니다. 중국을 거쳐 전해진 연등회는 고려에서 설행될 당시 농경 사회와도 맞물리며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신라 시대의 문헌인 『삼국사기』에 따르면 866년 경문왕이 황룡사에서 등불을 구경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연등회가 신라 시기부터 시작되었으며, 고려에 이르러 더욱 체계적이고 중요한 행사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고려 상원연등회의 정착과 발전
고려 태조 왕건은 불교 의례인 연등회와 팔관회를 국가의 연례 행사로 지정하며, 이를 통해 사회 통합과 민심 결집을 도모했습니다. 왕건의 「훈요십조」에서도 연등회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후대 왕들이 이를 유지하도록 유훈으로 남겼습니다.
하지만 성종 시대에 유교 이념이 강화되면서 한때 연등회가 폐지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종 시대에 거란과의 전쟁을 계기로 연등회가 부활되었고, 이후에는 불교와 유교 의례가 공존하는 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4. 고려 상원 연등회의 설행 과정과 절차
현종 시대에 연등회의 설행일은 정월 보름에서 2월 보름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는 고려의 농사 주기에 맞추어 조정된 것으로, 중국의 농경 의례와의 차이를 반영한 결정입니다.
연등회는 2월 14일과 15일, 총 3일간 진행되었습니다. 첫째 날인 소회일에는 강안전과 봉은사에서 의식이 열렸고, 둘째 날인 대회일에는 국왕과 신하들이 함께 모여 연회를 열었습니다. 이때 의식 참가자들은 신분과 관계없이 음식을 나누며 친밀감을 도모했습니다. 밤에는 등불과 함께 다양한 공연과 놀이가 열리며 축제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5. 다양한 연등회의 형태와 의의
고려 시대의 연등회는 상원 연등회 외에도 특설 연등회와 석가탄신일 연등회 등 다양한 형태로 열렸습니다. 이 중 석가탄신일 연등회는 민간에서 세시풍속으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6. 연등회의 역사적 의의와 현대적 가치
연등회는 고려 왕실의 권위를 높이고 백성의 결속을 강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왕과 백성이 신분을 초월해 함께 즐기는 이 행사는 고려 사회의 평등과 통합을 상징했습니다. 그러나 고려 말 원간섭기에는 그 위상이 약화되었고, 조선 건국 이후에는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연등회는 사월초파일 행사로 전승되고 있으며, 2012년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이는 고려 시대의 연등회가 단순한 불교 행사를 넘어 현대 사회에서도 문화유산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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