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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나는 한국을 떠나 해외에 살고 있다. 앞으로도 한국에 돌아갈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주 가끔, 한 번씩은 한국에 가겠지만 한국에서 다시 행복해질 자신이 없다. 인간관계도, 사업도, 가족도 이제 다시는 되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한 근거를 찾기 위해서 각종 통계도 살펴보고, 사람들의 반응도 찾아보려고 하고 있었다. 교통사고 사망자보다 자살자가 많은 나라, 행복하기 위해 태어났지만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 하루하루가 고된 사람들, 희망을 품으며 고된 하루를 버텨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정말 많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굳이 행복을 찾고 싶진 않았다.

 

내가 해외에 오기 전에 생각했던, '할 수만 있으면 이 나라를 떠나겠다.'라고 생각했던 것이 우연한 계기로, 우연히 한국을 떠나게 되어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아마, 이 글을 쓰고 난 뒤엔 당분간 한국이나 한국사회에 대한 글을 쓰지 않게 될 것 같다. 관심을 끊고 싶어 질 것 같다.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불행하고, 괴로운 말만 가득하니까 말이다.

한국은 현재 인터넷 혐오 문화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혐오하는 글을 보고 나 조차도 그런 사람들을 혐오하게 되는 것이다. 어딜 가나 눈에 밟히는 글들이 많았다. 같은 사람이면서도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선을 넘는 댓글들이 많았다. 유튜브만 보더라도 굉장히 자극적이다. 그리고 생각해봤다. 애국심을 빼놓고, 한국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과연 살기 좋은 나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젊은 나도 이러한 것들을 매일 보면서 살아갈 텐데, 우리의 아이들이 과연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싶었다.

비난, 비판, 시기 질투가 당연시되고 남 잘되는 꼴을 못 보는 시민의식을 보면서, 어쩌면 선민의식이 나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니 말이다. 그리고, 정치에 대해서는 굳이 왈가왈부할 필요 없이 굉장히 최악인 것을 알 수 있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 없는 굳이 편 가르기 급급한 유치한 싸움을 보면서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방탄소년단이 빌보드에서 상위 랭크에 오르고 한국의 문화가 세계에 널리 알려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단순히 자부심이 아니라, 실제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는 한국사람들, 한국기업들이 있다. 그것을 보면서 한국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경쟁문화 때문이더라도 행복하게 산다는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다고 느끼게 되었다. 교육부터 시작해서 남녀차별, 세대갈등, 지역갈등, 정치 갈등 그리고 극 이기주의까지, 솔직히 예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는 중국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요즘에는 중국에서 일어날 법한 것들이 한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중고거래 앱을 통해 아이를 판다거나 허위 비방, 폭로, 무단 유포 등을 통해 어떤 사람의 이미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다거나, 의도적으로 사람을 괴롭힌다거나 하는 일들이 매우 많았다. 다른 나라보다 덜하다고 하기엔, 이미 비교대상으로 전락해버렸고 더 이상 이 나라에 기대를 하지 못하게 되었다. 한글을 사랑하고 태극기를 자랑스러워하지만,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몇몇 사람들 때문이라도 매우 부끄러운 나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과 착한 사람들은 각자 자리에서 정말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저 바라만 봐도 배울 것이 많고 존경스러운 마음이 드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를 떠나서 나는 그들에게 한참을 배워야 한다. 내가 만약 나라가 없는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이 들 것 같다. 그렇게 심한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꿈을 찾고, 재능을 살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내 포커스는 그런 사람들보다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있었다. 소외받고, 열등감이 가득하며, 자랑할 것이 없는 사람들 말이다.

 

모두가 가난하고 힘든 사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다. 물론, 잘 사는 사람들은 있을 것이다. 나도 가난하게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 때에는 꽤 많은 돈을 벌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서 몇 년만 참고 버티면서 일을 하면 적어도 방 한 칸은 걱정 없이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울에서 집을 융자 없이 구매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지방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적어도 내가 돌아갈 곳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월세살이가 익숙해졌다. 다른 사람들은 전세를 이야기하지만, 나는 월세가 밀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매우 만족스러웠었다. 나는 점점 현실에 길들여졌었고, 이윽고 세상을 보게 되었다. 부자가 아닌 사람들과 부자인 사람들을 봤다. 직접 옆에서 그들을 지켜봤다. 그들의 일상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력의 척도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노력하는 사람들은 부자든, 가난한 자든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견뎌야 할 삶의 무게는 차원이 달랐다. 가난한 사람들은 고시원에서 라면을 끓여먹으며 하루를 버틴다. 막연한 희망을 부여잡고서 말이다. 부자들은 넉넉한 자본과 인맥으로 더 많은 기회를 잡는다. 당연히, 더 수준 높은 교육을 받는다. 거기서부터 차이가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자를 욕하고 비난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고 가난한 사람들 모두 부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난한 사람이 기회를 얼마나 잡을 수 있을까, 나는 통계를 믿기로 했다. 중산층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산은 얼마인지 말이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그렇다. 현실이다.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많은 부를 가질 기회를 잡는다. 가난이 죄도 아니다. 부자가 있으면 가난한 사람도 있고 잘생긴 사람이 있으면 못생긴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못하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것이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라고 얘기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적어도, 열심히 하면 먹고살 길은 열려야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국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다. 불면증, 강박증, 자기혐오, 열등감 게다가 자학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개그로 소비되고 있다. 나는 그것이 마냥 웃기지가 않았다. 그 커뮤니티를 닫고 컴퓨터 전원을 끄면 다시 현실로 돌아올 텐데, 적막한 시간에 무엇을 상상하고 생각할까 싶었다. 내가 그랬듯이, 많은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한국사회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분명 적색경보가 커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매해 늘 억 나고 있다. 나는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다. 가난하고 아무것도 없는 사람도 더 많은 기회와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물론, 그들보다 더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적당히 불행했던 나의 과거와 인생을 생각하면 그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나도 이겨내고 있고, 버텨내고 있다.

 

해외살이와 한국에서의 차이

돈만 있으면 세계에서 제일 살기 좋은 한국이라는 말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의 편의성은 정말 세계 최상위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 걸까, 한국의 물가는 상당히 비싼 편에 속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일본보다도 물가가 비싼 품목이 많다. 한국에만 살고 있을 때는 몰랐는데, 해외에 오니 한국의 물가가 상당히 높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나의 서울생활

나는 서울에서 10년 가까이 살았다. 정말 많은 종류의 일을 했고 그중에서도 중개보조원 일을 했을 때는 서울에서 안 가본 곳이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매일 아침 운전을 하고 밤늦게 퇴근하는 삶이 반복이었다. 불행하진 않았다. 이미 충분히 불행을 맛봤기 때문에 그다음부터는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서 일을 했었다. 안 좋은 순간들도 많았고, 괴로운 시간들도 많았다.

내 서울생활은 다이내믹하고 막막했고, 열심히 했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사람들을 잃었다. 지금은 연락하는 사람이 없다. 어차피 지금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아닌 것이다. 나는 안다. 그들이 나를 만나러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안다. 그들도 나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나도 그들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비즈니스가 목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내게 원했던 것들과 내가 원했던 것이 달랐던 만큼, 그 이유는 분명했다.

나의 서울생활은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이미 지나간 시간이지만, 서울생활 동안에 정말 많은 일들을 겪었고 배웠고, 실망했으며, 후회스러운 순간들도 많았다. 가끔은 서울생활이 기억이 난다. 원룸 방 한 칸에서 몇 년을 살고, 그러다 오피스텔도 살아보고, 또다시 원룸으로 이사 와서 일을 하고 그렇게 살았다. 살인적인 방값에 돈을 모으기란 하늘에 별따기 같았다. 그래서 다시 그 생활을 해낼 자신이 없다. 젊은 날의 패기인 것이다. 당시 나는 굉장히 젊고 어린 나이였지만, 오히려 지금보다도 더 대담하고 거침없었으며, 더 어른스러웠다. 나는 잃을 것이 없었기에, 무서운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죽는 것이 무섭지 않았다. 죽을 때 고통스러움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이 없었을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을 추억하며, 그때와 달라진 한국사람들의 모습들과 세상 이야기를 비교해보며, 이제는 한국에 대한 미련을 버린다. 나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그저 현재를 살아가고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겠지만, 나 혼자만의 싸움으로 너무 지쳤던 것이다. 하지만, 한발 뒤로 물러나 보면 더 넓은 세계에서 더 많은 기회가 있고 더 많은 배움의 시간이 있었다.

하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모두 다 기억이 나지도 않을뿐더러 떠올리기 싫은 그런 기억들도 있었다. 친구들, 가족, 나의 미래까지도 정말 괴로운 시간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미래를 기대하지 않았고 내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 가진 것이 별로 없었기에 나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다. 그것은 충분히 나도 이해가 갈 정도였다. 서울에 내 터가 없었다. 서울을 벗어나면 내가 돌아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나는 외로움과 싸워야 했고 나 자신만을 의지했어야 했다. 그리고 타인이 얼마나 냉정한지 알게 되었고, 나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그저 친절한 척할 뿐이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이 비즈니스였다. 그런 마음을 먹고서야, 나는 편안해질 수 있었고, 지갑에 돈도 조금 모였으며 삶에 약간의 여유가 생길 수 있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취미가 생기기 시작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얻기도 했으며, 주말이 즐거웠던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나는 매일, 매일이 괴로웠고 울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지금 한국에 없지만, 나의 20대는 오로지 서울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내가 대학을 그만둔 것은 매우 큰 행운이었고 나의 최고의 선택이었다. 내가 서울에 상경해서 고시원에서부터 시작해서 원룸에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지방보단 서울에서 배울 것이 많아서였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돈을 모은다면 지방에서 모으는 것이 더 많이 모았을 수 있겠지만, 서울에 살면서 느꼈던 것들과 경험들은 어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30대가 된 내가 앞으로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나 스스로 알 수 있었다. 그 경험들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간다면 기회는 분명 올 것이다. 대신, 항상 배우는 마음을 지녀야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차피 남의 것을 탐내봐야 내 것이 되지 않고 내 감정과 기분은 나의 의식주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현실적으로 내가 넉넉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 테니 생활에 걱정이 없을 정도로 넉넉히 돈을 모으고 저축하는 습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은 내가 다소 게을러지긴 했지만, 나는 언제든지 열심히 살아갈 각오가 되어있다. 그 누구보다도 말이다. 그리고, 다시금 내가 모든 것을 잃는다고 할지라도 내 지식과 경험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서 언제든지 다시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아마도 나를 잡초 같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쓰러질 것 같지만 쓰러지지 않고, 포기할 것 같지만 포기하지 않아서 그럴 것이다.

 

주인공이 되어라.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지만, 사실 내게 가장 필요한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별로 관심은 없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노력에 나도 자극을 받고 열심히 하려고 하는 것뿐이다. 다른 사람이 어떤 재능을 가졌는지, 얼마나 돈이 많은지도 별로 관심이 없다. 세상 인구를 다 비교해도 나는 결코 꿀리지 않을 사람이라고 늘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누구나 죽기에, 인생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한국은 많이 변했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유리하게 만드는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곳, 나의 처지가 전부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과거의 인연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만날 인연들이 훨씬 많다는 것과 언제든지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당신이 주인공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을 것이고, 주인공처럼 살아야만 주인공이 된다는 것도 말해주고 싶었다. 아마, 우리나라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 이상 할 얘기도 없고 나는 이제 과거를 묻고, 미래로 나아가고 싶다. 달라진 세상에 적응하고 싶다. 그래서 쓰는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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