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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66주년 KFN스페셜] 작전명 '크로마이트(CHROMITE)'

[인천상륙작전 66주년 KFN스페셜] 작전명 '크로마이트(CHROMITE)'

인천 상륙 작전(仁川上陸作戰, 영어: Operation Chromite)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15일 UN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의 주도로 진행된 상륙작전이다. 이 작전에는 7만 5천여 명의 병력과 261척의 해군 함정이 투입되었다. 2주 후 유엔군은 서울을 점령하게 된다. 작전 암호명은 크로마이트 작전(영어: Operation Chromite)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군은 남쪽인 낙동강 방어선에서 힘겨운 방어전을 벌이고 있었다. 인천은 낙동강과 부산 교두보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조선인민군이 거의 방어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곳에 기습 상륙 작전을 개시함으로써, 유엔군은 손쉽게 인천을 점령하여 서울까지 탈환했다. 이로써 조선인민군은 보급로를 차단당하게 되었다.

 

상황을 타계할 상륙 작전 계획

1. 상륙 지역 선정

미국 합동전략기회 및 작전단(JSPOG)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작전명은 크로마이트(Chromite)로 정하고 주요 상륙지로는 총 3개 지역을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인천(100-B), 군산(100-C), 주문진(100-D)이 그것이다. 일본 도쿄에 있는 미국 극동군사령부의 관계참보부에서 상륙지역을 인천으로 결정하여 관련 부대에 하달했다.

2. 미 합동참모부의 인천 반대

미 합동참보부가 상륙 작전 자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했지만 상륙 지역을 인천으로 하는 것에는 반대했다. 인천의 조수, 수로, 해안 조건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 수로가 협소하여 대규모 함정의 진입이 불가능하다. 적이 수로에 기뢰를 부설해놓아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10미터에 달해 썰물 시 해안에 2~5킬로미터의 갯벌이 생겨난다. 이로 인해 상륙함의 접근이 곤란하다.

3. 미 합동참모본부의 최종 결정

미국 육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이 됴쿄 미국 극동군사령부까지 와서 1950년 8월 23일 맥아더와 회의를 개최하였다. 맥아더가 상륙 지역을 인천으로 주장하면서 한 브리핑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조선인민군의 전투부대는 모두 낙동강 방어선에서 미 8군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 병참선이 길게 늘어져 있어 후방인 서울에서 이를 차단할 수 있다. 그래서 서울과 가장 가까운 인천이 상륙 지역이 되어야 한다.
  • 서울은 전략적, 정치적, 심리적 이유에서 신속히 탈환해야 한다.
  • 인천은 미 8군이 망치가 되고, 미 10군이 모루가 되어 인민군을 분쇄하게 해 줄 것이다.
  • 결국 8월 28일에 미국 합동참모본부는 맥아더의 계획을 승인하고, 8월 30일에 인천상륙작전 명령을 하달하고, 상륙작전일을 9월 15일로 정했다.

미해군 상륙지휘함 USS 마운트 맥킨리(USS Mount McKinley)에서 유엔군 총사령관인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이 방어가 약했던 인천을 포격하는 것을 살펴보고 있다.

Inchon Landings - First Pictures (1950)

British Pathè의 기록영상. 상륙 초기의 모습이 담겼다.

Korean War - 1950:D-Day Invasion Inchon 250075-01 | Footage Farm

함대의 포격 엄호 속에 해안으로 돌진하는 유엔군 상륙정들.

4. 6.25 전쟁의 전세 역전

인천상륙작전은 대한민국 국군과 UN군의 열세에 있었던 6.25 전쟁의 전황을 단숨에 뒤집었다. 이 작전으로 인해 인천과 서울에서 조선인민군을 쫓아낼 수 있었다.

당시 한반도에서 38선 이북과 이남을 오가는 대용량 수송 가능한 교통수단은 모두 서울을 거쳐갔다. 따라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 수복 성공은 38선 이남의 조선인민군에 대한 보급이 끊기고 조선인민군이 낙동강 전선과 인천-서울의 한국군-UN군에 포위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륙작전 성공 이후 이남의 북한군은 급격히 와해되었고, 오히려 한국군과 UN군이 38선 이북으로 진군하게 된다.

많은 군사학자들도 이 작전을 20세기 역사상 최고의 군사작전이라 평한다. 미국의 군사역사학자인 스펜서 C. 터커(Spencer C. Tucker)는 인천 상륙작전을 "훌륭한 성공이며 거의 결점 없이 실행되었다"(a brilliant success, almost flawlessly executed)고 극찬했다.

잘못 알려진 사실

국내 언론 최초 공개, 인천상륙작전 기밀문서★순삭밀톡 6·25 70주년 스페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