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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흥륜사지: 신라 불교의 시작점과 역사적 의의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1. 경주 흥륜사의 개요

경주 흥륜사(興輪寺)는 신라 최초의 사찰로, 신라의 불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흥륜사는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신라에 온 승려 아도(阿道)가 신성한 장소로 전해지는 천경림(天鏡林)에 처음 지어졌다. 하지만 이후 폐사되었다가 527년(법흥왕 14년), 신라에 불교를 정착시키기 위해 법흥왕이 본격적으로 흥륜사를 재건하면서 그 명맥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이차돈(異次頓)의 희생이 큰 역할을 했다. 최종적으로 544년(진흥왕 5년)에 흥륜사가 완성되었으며, 진흥왕은 절의 이름을 대왕흥륜사(大王興輪寺)라 명명했다.

오늘날 경주 흥륜사지의 위치는 경상북도 경주시 사정동에 해당하며, 흥륜사 터는 경주공업고등학교 부근으로 추정된다. 다만, 해당 지역에서 발굴된 기와 조각들은 선덕여왕 시기에 지어진 영묘사(靈妙寺)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는 학설도 제기되었다.

 

2. 이차돈의 희생과 흥륜사 창건

신라에 불교가 뿌리내리는 데 핵심적 역할을 한 사건은 이차돈의 희생이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법흥왕은 불법을 전파하고 나라의 복을 기원하기 위해 사찰을 짓고자 했지만, 당시 신하들과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차돈은 불법의 확산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고, 그가 참수될 때 흰 피가 솟아오르는 기이한 일이 발생했다. 이는 신성한 징조로 받아들여졌고, 불교의 공인을 가능하게 했다.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이차돈의 죽음 이후 흥륜사의 건립이 다시 추진되었고, 535년(법흥왕 22년)에 공사가 재개되었다. 544년에 완공된 흥륜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국가의 복지와 치안을 기원하는 불교적 이상을 담은 대규모 건축물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흥륜사는 국가 주도 불교정책의 상징이 되었다.

 

3. 백제와 신라의 교류와 흥륜사의 건립 배경

흥륜사의 창건은 신라 내부의 노력뿐만 아니라, 당시 백제와의 외교·문화적 교류의 산물로도 해석된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흥륜사 초기의 기와 문양과 제작 방식은 백제의 대통사(大通寺)에서 영향을 받았다. 백제는 중국 남조의 양(梁)과의 교류를 통해 선진 불교 문화를 수용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규모 사찰을 건립했다.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신라 왕실은 백제 성왕의 불교치국(佛敎治國) 정책과 대통사 건립을 모델로 삼아 흥륜사를 창건했다. 법흥왕과 진흥왕 또한 백제 왕들이 추구한 전륜성왕(轉輪聖王) 이념을 수용하며, 불교를 국정 운영의 이념으로 삼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흥륜사의 건립은 국가 발전과 통치 철학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4. 흥륜사의 규모와 위상

흥륜사는 국가 주도의 대규모 불사였기에, 그 규모와 위상은 상당한 수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흥륜사에는 불전, 탑, 남문, 동·서 낭무(廊廡) 등이 있었다. 특히 흥륜사는 나라의 큰 법회를 주관하며, 황룡사(皇龍寺), 사천왕사(四天王寺)와 함께 신라 최대의 사찰로 기능했다.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흥륜사는 불교 신앙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나라의 평안과 복지를 기원하는 역할도 담당했다. 544년 완공 이후, 흥륜사에는 각국의 사신과 승려들이 방문했으며, 549년(진흥왕 10년)에는 중국에서 온 승려가 불사리를 봉안하기도 했다. 이는 흥륜사가 당시 국제적 위상을 지닌 사찰로 기능했음을 보여준다.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5. 흥륜사의 쇠퇴와 소실

흥륜사는 신라가 멸망한 후 점차 그 위상을 잃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 화재로 소실되면서 폐사되었다. 그러나 흥륜사는 신라 불교의 시초이자 국가의 중요한 종교적 상징으로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흥륜사의 역사와 그 유산은 신라 불교의 전파와 발전, 그리고 국가 운영의 중요한 이념적 기초를 제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경주 흥륜사지(慶州 興輪寺址)

 

6. 결론

경주 흥륜사는 신라 불교의 상징적인 시작점이자 국가 주도의 불교 정책을 상징하는 중요한 사찰이었다. 이차돈의 희생과 법흥왕의 결단, 그리고 백제와의 교류를 통한 문화적 발전이 흥륜사의 창건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비록 사찰 자체는 소실되었으나, 그 역사적 의미와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신라 불교문화의 뿌리로서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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