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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촌동 고분군: 한성백제시대 왕과 귀족들의 무덤

서울 석촌동 고분군 전경
서울 석촌동 고분군 전경

 

1. 개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을 중심으로 방이동 일대까지 펼쳐진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은 한성백제 시대의 왕족과 귀족 계층의 무덤이다. 이 고분군은 백제 도성의 중심 기능을 담당했던 주요 시설 중 하나로, 풍납토성몽촌토성에서 각각 3km와 2.3k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석촌동 일대는 한강 범람원 남쪽에 있는 저지대와 구릉 지형으로, 과거부터 중요한 생활과 문화의 거점이었다.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

현재 석촌동 고분군 사적 공원에는 적석총 5기, 즙석봉토분 1기, 토광묘 2기 등 총 8기의 고분이 복원 및 정비되어 있다. 이곳의 고분들은 서울 지역에서 백제 왕실과 귀족들이 묻힌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2.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조사 경과

2.1 일제강점기의 조사

석촌동 고분군은 1911년 일제의 조선 고적조사 사업 과정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초기 조사에서는 석촌동과 주변 방이동 일대에 분포한 갑총(봉토석실분)을총(적석총)을 구분하며 약 90여 개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1916년과 1917년 이루어진 후속 조사에서는 고분 분포도가 더욱 확대되어 290여 기의 고분이 밀집해 있음을 밝혀냈다.

당시 조사된 고분들의 대부분은 석실 내부에 돌을 쌓고 흙을 덮은 형태와, 단순히 돌을 쌓아 올린 적석총으로 나뉘었다. 1930년대 이후 한국전쟁과 잠실 지역 개발이 진행되면서 고분군의 상당 부분이 파괴되거나 훼손되었다. 특히 전쟁 중에는 미군이 한강 도강 작전의 일환으로 돌무지들을 치워 강둑을 보강하는 등 고분의 흔적이 사라지기도 했다.

 

 

2.2 1970년대의 본격 발굴 조사

1970년대 서울 잠실 개발에 앞서 문화재관리국 주관으로 석촌동 고분에 대한 발굴 조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석촌동과 가락동, 방이동 일대의 고분들에 대한 정밀 조사가 시작되었다. 1971년에는 총 19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서울대학교와 경희대, 숭실대 등의 대학들이 연합 발굴을 통해 각각 고분의 구조와 특징을 밝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때 주목할 만한 성과는 석촌동 3호와 4호분의 조사로, 고구려 적석총과 유사한 구조가 확인되었다. 특히 석촌동 4호분은 계단식 적석총으로, 고분 상부에 횡혈식 석실을 갖추고 있어 백제와 고구려 문화가 융합된 형태로 평가되었다.

석촌동 고분군

2.3 1980년대 복원과 정비 작업

1980년대에 들어 고분군 내 민가가 철거되면서 석촌동 3호분과 4호분에 대한 복원 및 정비 작업이 이루어졌다. 석촌동 3호분은 동서 50.8m, 남북 48.5m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광개토대왕릉과 유사한 형태를 보였다. 또한 이 고분에서는 동진(東晉) 청자와 백제토기, 금제 장신구 등이 출토되어 4세기 후반 백제의 전성기를 상징하는 무덤으로 해석되었다.

4호분은 내부를 점토로 채운 후 외부를 돌로 쌓은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으며, 연도와 현실을 갖춘 횡혈식 석실이 발견되었다. 이는 백제의 전통적 매장 양식과 고구려식 적석총이 결합된 형태로 백제와 고구려의 문화적 교류를 보여준다.

석촌동 고분군

2.4 2015년 이후 추가 발굴 조사

2015년에는 고분군 내 지반이 함몰되는 사고가 발생해 한성백제박물관 주관으로 긴급 조사가 진행되었다. 그 결과 새로운 적석총들이 발견되고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면서 석촌동 고분군에 대한 연구가 다시 활성화되었다. 특히 2020년 조사에서는 1호분과 2호분 사이에서 추가로 15기의 적석묘가 발견되었다.

 

3. 주요 고분 양식과 특징

3.1 적석총(積石塚)

석촌동 고분군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 중 하나는 적석총이다. 적석총은 고구려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돌을 계단식으로 쌓아 올리는 구조를 갖는다. 석촌동 3호분은 그 거대한 규모와 함께 동진제 청자와 백제의 토기가 출토된 점에서 백제의 왕족 무덤으로 추정된다.

적석총(積石塚)
적석총(積石塚)

3.2 즙석봉토분(葺石封土墳)

가락동 고분에서는 돌과 흙을 함께 사용해 무덤을 덮은 즙석봉토분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 양식은 백제 초기의 독창적인 매장 방식으로 평가되며, 매장 주체부에는 목관과 옹관이 함께 발견되었다.

즙석봉토분(葺石封土墳)
즙석봉토분(葺石封土墳)

3.3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

횡혈식 석실은 고구려와 백제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된 묘제 양식이다. 현실(玄室)과 연도(羨道)를 갖춘 석촌동 4호분과 5호분은 백제 석실분의 전형적인 예로 평가된다. 특히 이러한 석실들은 한강 유역을 차지한 신라에 의해 재사용되기도 하였다.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
횡혈식 석실분(橫穴式 石室墳)

 

4. 석촌동 고분군의 역사적 의의

석촌동 고분군은 한성백제 시기부터 고구려와 신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화적 변화를 반영하는 중요한 유적이다. 백제의 왕과 귀족 계층의 무덤들이 조성된 이곳은 한강 유역에서 백제의 정치적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이후 고구려와 신라가 이 지역을 차지하면서 석실분을 재사용하거나 추가로 축조하기도 했다.

석촌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비록 현재는 약 300기였던 고분 중 일부만이 남아 있지만,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문화가 중첩된 중요한 유산이다. 석촌동 고분군의 발굴과 연구는 고대 한반도의 정치적, 문화적 변동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5. 결론

석촌동 고분군은 한성백제 시대의 왕과 귀족들의 무덤으로, 한강 유역에서의 백제 문화의 번영과 쇠퇴를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진행된 조사와 발굴을 통해 백제와 고구려, 신라의 문화가 융합된 다양한 고분 양식이 확인되었다. 오늘날 석촌동 고분군은 사적 공원으로 복원되어 시민들에게 역사와 문화를 전달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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