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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천전리 서석(蔚州 川前里 書石) - 신라 지배층의 흔적과 종교적 주술의 상징

울주 천전리 서석(蔚州 川前里 書石)
울주 천전리 서석(蔚州 川前里 書石)

개요

울주 천전리 서석(蔚州 川前里 書石)은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에 위치하며, 국보 제147호로 지정된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 유적은 신라 시대 지배층의 발자취를 남기며,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그림과 명문이 새겨진 독특한 바위다. 각석(刻石)이라는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암반에 새겨진 다량의 명문들로 인해 서석(書石)이라는 이름이 더 자주 사용된다. 이 유적은 고대인들의 생활과 종교적 신념, 신라 왕족의 행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발견 과정과 현재의 모습

천전리 서석은 1970년 동국대학교 학술조사단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이후 정밀 조사와 연구가 진행되었다. 높이 약 2.7m, 폭 약 9.5m의 큰 바위 면에는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과 동물·인물 그림, 그리고 명문이 새겨져 있다. 대곡천 강변에 위치한 이곳은 경주와 울산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이자 명승지로 활용되었다.

서석의 조각과 명문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 번째로는 상단부에 있는 기하학적 문양과 동식물 그림들이고, 두 번째는 하단부에 새겨진 세선 암각화들이다. 마지막으로 다양한 서체로 기록된 명문들이 있으며, 이는 각각 다른 시대에 걸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부의 문양과 종교적 의미

천전리 서석의 상부에는 기하학적 문양과 동물·인물상이 새겨져 있다. 마름모꼴, 둥근 무늬, 굽은 무늬 등의 기하학적 패턴은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의 무늬 토기 양식과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동물 그림은 사슴, 염소, 말, 상어 등 다양한 종이 등장하며, 종교적 신념을 반영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특히 인두수신상(人頭獸身像)은 신앙적 요소를 암시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인물상은 얼굴만 표현된 것과 전신이 묘사된 것 두 가지로 나뉘며, 대부분 종교적 혹은 의례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이는 천전리 서석이 고대 종교적 주술의 중심지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

 

 

하부의 세선 암각화와 생활상

하단부에는 인물과 기마 행렬도, 상상 속 동물, 배의 항해 장면 등이 정교하게 묘사되어 있다. 말과 새를 비롯한 동물 그림과 함께, 용과 같은 상상의 동물들도 등장해 신화적 상징성을 나타낸다. 이 외에도 사람이 노를 젓는 배와 돛을 단 배가 그려져 있어 당시 해양 교통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명문과 신라 왕실의 흔적

서석의 명문은 주로 하단부에 집중되어 있으며, 법흥왕 시기부터 시작해 신라 후기까지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명문들은 대개 인명과 간지(干支)를 기록하거나 왕실 인물들의 방문 기록을 남긴 것이 많다.

주요 명문들

  1. 「천전리서석」 원명
    • 법흥왕 12년(525) 사부지갈문왕이 방문해 골짜기에 '서석곡(書石谷)'이라는 이름을 붙였음을 기록.
  2. 「천전리서석」 추명
    • 14년 후 다시 방문한 왕자와 왕비 일행의 기록으로, 사부지갈문왕과 어사추여랑왕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3. 계사명(癸巳銘)
    • 고구려 관등 '대형가(大兄加)'가 등장하며, 신라와 고구려 간의 밀접한 관계를 엿볼 수 있다.
  4. 갑인명(甲寅銘)
    • 흥륜사 창건과 관련된 기록으로 추정되며, 신라 불교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5. 계해명(癸亥銘)
    • 543년 혹은 603년으로 추정되는 명문으로, 신라의 관등 체계와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파악하는 단서가 된다.

천전리 서석의 역사적 의의

울주 천전리 서석은 신석기 시대부터 주술적 의례의 장소로 기능했으며, 청동기 시대에는 기하학적 문양이 더해졌다. 삼국시대와 통일신라 시기에 이르러서는 왕족과 귀족들이 이곳에 명문과 그림을 남기며 그들의 권력과 신념을 표현했다. 특히 법흥왕과 관련된 기록들은 신라 왕실의 역사와 종교적 전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작용한다.

7세기 이후 명문들은 짧고 간결해지며, 귀족과 승려의 방문도 줄어든다. 그러나 일반 백성들은 여전히 이곳에 주술적 그림을 새기며 신앙을 이어갔다.

 

결론

울주 천전리 서석은 한국 고대사와 문화사의 중요한 유적지로, 신라 왕실과 귀족들의 발자취뿐 아니라 다양한 시대의 종교적·문화적 흔적을 담고 있다. 이곳에 남겨진 명문과 그림들은 당대의 사회와 신앙, 그리고 예술적 표현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다. 천전리 서석은 아직 해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아, 앞으로의 연구를 통해 더 많은 비밀이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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