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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제동맹: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동맹의 역사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서울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1. 나제동맹의 개요

나제동맹(羅濟同盟)5세기에 고구려의 남진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신라백제가 맺은 군사 동맹입니다. 고구려는 광개토왕(廣開土王)과 장수왕(長壽王)의 통치 시기에 남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며 백제와 신라를 압박했습니다. 이에 백제는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신라와 협력하게 되었고, 신라 역시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백제와 손을 잡았습니다.

이 동맹을 통해 한강 유역을 점령하는 등 군사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으나, 이후 신라는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 전체를 독점합니다. 신라의 이러한 선택은 결과적으로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2. 고구려의 노객이 된 신라왕

신라는 초기에는 고구려의 압박 속에서 인질 외교를 통해 생존을 도모했습니다. 399년, 백제와 가야의 사주를 받은 왜(倭) 세력이 신라를 공격하자, 내물왕(奈勿王)은 고구려 광개토왕에게 구원을 요청하며 스스로를 노객(奴客)이라 칭했습니다. 이에 고구려는 5만의 병력을 보내 신라를 구원하고 가야와 왜 세력을 물리쳤습니다.

이 사건 이후 신라는 고구려의 속국에 준하는 지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신라 왕경(왕이 거주하는 지역) 근처에는 고구려 군대가 주둔하며 신라를 견제했고, 신라는 고구려의 보호를 받는 대신 정치적으로 큰 제약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3. 자립을 모색하는 신라

신라는 눌지왕(訥祗王) 시기부터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립을 시도합니다. 왕위에 오른 눌지왕은 고구려에 인질로 잡혀 있던 동생 복호왜국에 보내졌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는 등 외국으로부터의 간섭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고구려 장수왕이 평양으로 천도(427년)하고 본격적으로 남진정책을 펼치면서 신라와 백제는 더 큰 위협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백제는 434년 신라에 좋은 말과 흰 매를 선물하며 동맹을 제안하였고, 신라는 이 제안을 수락하며 나제동맹이 시작되었습니다.

 

4. 나제동맹의 체결과 가동

나제동맹의 성립 시점은 434년부터 본격적인 외교 교류가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450년경 고구려 장수가 신라 지역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며, 고구려와 신라의 관계는 악화되었습니다. 이에 눌지왕은 고구려군 100명을 몰살시키는 '수탉을 죽여라' 작전을 통해 신라에 주둔하던 고구려군을 모두 축출하고, 고구려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됩니다.

이 시점부터 나제동맹은 실질적인 군사 동맹으로 강화됩니다. 신라와 백제는 고구려의 침공에 상호 구원군을 파견하며 동맹을 유지했고, 백제는 왜국과 외교 관계를 강화하며 고구려를 견제했습니다.

 

 

 

5. 더욱 강화되는 나제동맹

고구려가 475년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하고 개로왕(蓋鹵王)을 살해하자 백제는 웅진(熊津, 현재 공주)으로 수도를 옮겨 재건합니다. 이때 백제는 신라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493년 왕실 혼인 동맹을 제안합니다.

신라는 백제 동성왕(東城王)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벌찬 비지의 딸을 백제 왕비로 보내며 나제동맹이 혼인 동맹으로 발전합니다. 이를 통해 두 나라는 군사적으로 더욱 결속하게 되었고, 고구려의 침공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

 

6. 한강 유역 쟁탈전과 동맹의 와해

신라는 진흥왕(眞興王) 시기에 국력이 크게 성장하였고, 마침내 551년 백제와의 연합 작전을 통해 고구려의 한강 유역을 점령합니다. 그러나 553년 신라는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하류 지역까지 차지하며 동맹을 파기합니다.

한강 유역 쟁탈전

이에 격분한 백제 성왕(聖王)은 가야의 군대를 끌어들여 관산성 전투를 벌였으나, 전투 도중 성왕이 전사하면서 전쟁은 신라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신라는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로 인해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적으로 돌리는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7. 결론: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는 동맹

나제동맹은 고구려의 남진에 맞서 신라와 백제가 손을 잡은 생존을 위한 동맹이었습니다. 하지만 동맹의 성과가 신라의 국력 성장으로 이어지자, 신라는 더 큰 이익을 위해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을 독점했습니다.

진흥왕 때의 영토 확장
진흥왕 때의 영토 확장

  • 마운령 순수비
  • 황초령 순수비
  • 북한산 순수비

이 사건은 동맹 관계가 영원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로 평가됩니다. 당시 동맹은 철저히 국익과 생존을 위한 수단이었고, 신라는 기회가 왔을 때 백제를 배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나제동맹의 와해는 결국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 모두를 적으로 돌리게 만들었고, 삼국 간의 치열한 경쟁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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