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경주 황남대총 개요
경주 중심부에 솟아있는 수많은 구릉들이 신라 왕릉임을 인식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반부터였다. 일제강점기인 1906년,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황남동 남총(南塚)을 발굴하면서 신라의 적석목곽분(積石木槨墳)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후 금관총, 서봉총, 금령총 등의 왕릉이 발굴되며 신라 무덤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광복 이후인 1946년에는 호우총(壺衧塚)을 우리 손으로 발굴하면서 본격적인 조사 작업이 시작되었고, 1970년대에 들어서는 천마총과 황남대총을 중심으로 대규모 발굴이 진행되었다. 특히 황남대총은 경주에서 가장 크고 복잡한 무덤으로, 남북 길이 120m, 동서 지름 80m, 높이 약 22m에 달하는 거대한 봉분이 특징이다. 이 거대한 무덤은 남·북 두 개의 무덤이 붙어 있는 형상으로, 이러한 구조 때문에 표형분(瓢形墳)이라고도 불린다.
황남대총의 발굴 작업은 천마총의 조사를 마친 후 진행되었으며, 사적 제40호로 지정되어 경주의 대릉원 내에서 관리되고 있다. 남쪽 무덤은 왕(마립간)의 무덤으로, 북쪽 무덤은 왕비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 출토된 금관과 다채로운 유물들은 신라 사회의 화려한 문화와 장례 의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2. 최고 기술력으로 만든 죽음의 공간
황남대총은 죽은 자의 권위를 상징하는 장대한 무덤 건축물이다. 이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는 신라 왕을 ‘마립간(麻立干)’이라 부르던 5세기경이다. 내물마립간부터 지증마립간까지 이어지는 이 시기의 무덤은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墳) 형식으로, 당시 신라의 건축·토목 기술의 정점을 보여준다.
황남대총은 남분(남쪽 무덤)과 북분(북쪽 무덤)으로 구성되며, 남분은 주곽(왕의 관이 놓인 곳)과 부곽(부장품을 두는 곳)으로 나뉘어 있다. 남분에서 11,0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고, 북분에서는 1,200여 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들은 돌과 나무를 조합한 독창적 구조로, 덧널 주위에 나무틀을 세워 돌무지를 안정적으로 쌓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특히 남분의 덧널은 이중 구조로 되어 있으며, 기둥과 가로대를 엮어 돌무지를 지탱하는 나무틀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기술은 무덤의 붕괴를 막기 위한 정교한 공법으로, 천마총에서도 유사한 구조가 확인되었다. 이렇듯 황남대총의 축조는 막대한 노동력과 자재를 동원한 대규모 공사로, 하루 300명의 인력을 동원해 121일 이상 소요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죽은 자의 권력을 이어받는 산 자의 퍼포먼스
신라 사회에서는 조상 숭배가 왕의 권위를 정당화하는 중요한 의식이었다. 마립간이 죽으면 왕의 장례는 단순한 매장이 아니라 정치적 계승 의례로 기능했다. 봉분을 쌓고 무덤에 유물을 부장하는 행위는 산 자가 죽은 자의 권력을 이어받는 상징적인 퍼포먼스였다.
장례 의식에서는 무덤 속에 물건을 넣는 것뿐만 아니라 훼기(毁器)라고 불리는 부장품을 의도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도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황남대총의 남분에서는 굽다리접시의 굽을 부러뜨린 흔적이 발견되었고, 봉분 꼭대기에서는 손상된 말띠꾸미개가 확인되었다. 이와 같은 의식은 죽은 자와 관련된 물건들을 부수고 분리해 매장함으로써 저승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상징했다.
서봉총의 사례에서도 무덤 둘레에 도랑을 파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냈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러한 복잡한 의식들은 무덤을 통해 산 자와 죽은 자의 권력이 교차하고, 새로운 통치자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4. 저승길 만찬: 제사 음식과 동물 희생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동물과 식물 유물은 신라 사람들이 장례식에서 사용한 제사 음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무덤 봉분에서는 소·말·닭·물고기·조개류 등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죽은 자가 저승에서도 풍족한 삶을 누리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었다.
무덤의 봉분 중간에 묻힌 큰 항아리 4개에는 작은 그릇과 함께 짐승의 뼈, 조개껍데기, 물고기 뼈가 담겨 있었다. 조류 중에서는 닭이 가장 많았고, 참돔과 복어 같은 물고기도 통째로 매장되었다. 패각류로는 전복, 소라, 가리비 등이 포함되었으며, 심지어 거북이 뼈도 발견되었다. 이러한 풍성한 제사 음식은 죽은 자가 저승에서도 부족함 없이 지내도록 준비된 것이었다.
5. 눈부신 보물들과 함께 잠들다
마립간 시기의 왕릉은 신라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화려한 유물들로 가득 차 있었다. 황남대총에서는 금관, 금동관, 금 허리띠, 칠기, 철제 무기, 그리고 외국에서 들여온 유리 그릇과 청동기 등이 출토되었다. 북분에서는 화려한 금관이, 남분에서는 금동관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두 무덤의 주인이 왕과 왕비였음을 암시한다.
특히 황남대총의 금관은 ‘山’ 자 모양의 가지와 사슴뿔 모양 장식이 특징이며, 여러 개의 달개 장식과 곱은 옥이 매달린 화려한 초기 금관이다. 이러한 유물들은 신라가 5~6세기 국제적 교류를 활발히 했음을 보여준다.
6. 결론: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황남대총
황남대총은 신라 왕실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하는 거대한 무덤이다. 이곳은 단순한 매장지가 아니라,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공간이자 산 자와 죽은 자의 권력이 만나는 장이었다. 화려한 유물과 풍성한 제사 음식은 고대 신라인들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무덤을 통해 우리는 신라의 문화, 정치, 경제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적인 세계관까지 엿볼 수 있다. 황남대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라의 찬란한 유산으로 남아, 우리에게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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