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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고통

 

창작의 고통

그 누가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으랴, 잠을 자는 시간에 계획은 존재하지 않았다. 자면 일을 하고, 일을 하다가 피곤하면 자고, 딱 그 두 가지의 생활이 나의 전부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것 같다. 일을 하면서도, 그래 어쩌면 지금처럼 이렇게 을을 쓰는 것을 일이라고 포함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결국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겠다.

넓게 보면 일이고, 작게 보면 연구요, 발전이다. 새로운 기술들을 습득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서 꽤나 많은 시간을 반복하고 끊임없는 웹 서칭을 한다. 누구는 설명을 개떡같이 해줘도 내가 찰떡같이 알아먹어 새롭게 작업을 한다고 하면, 또 어떤 글은 찰떡같이 글을 써도 내가 개떡같이 알아먹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글이든 디자인이든 둘 다 개떡같이 창작의 고통을 느껴야 하는 것은 피차일반이다. 그나마 글은 조금 자유로운 것이 어떤 일정한 틀에 얽매이지 않는다. 수정하기에도 쉽고 내용의 양만 조금 늘릴 수 있으면 금방 완성이 된다.

 

정답

그렇지만, 디자인은 정답이 없다. 각 클라이언트에게 만족할만한 디자인을 제작해줘야 하고, 그것에 대한 단가계산도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 결국 나도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 그만큼 많은 공부와 시간을 들였던 것인데, 남들보다 조금 더 벌지만 뭔가 조금 더 제대로 된 대가를 받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 이유는, 결국 시간으로 따지면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허탈하게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버는 이유는 그저 많이 일을 해서 그런 것일 테니 말이다.

 

 

열심히 오랫동안 일을 하는데 오히려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이 우스운 일이 아닌가, 글이라는 것도 계속 타이핑을 하고 있으면 어쨌든 간에 위에서 쭉 내려오는 것이 글이다. 그렇게 글이라는 것도 쌓이고, 디자인도 각 요소마다 쌓이고 겹쳐지고 합쳐지면서 새로운 이미지와 상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짧은 초, 분, 시간의 간격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예술인 것이다.

 

창작의 시간

그렇지만, 마치 창작의 시간은 그 사이의 침묵을 깨는 일이자, 공백의 틈새를 메우는 일인 것만 같다.

그래서 그것을 찾는 것은 하나의 미로 찾기와도 같고,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작업하는 것도 디자인은 또 예술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부분에서 타협을 찾는 것도 더 중요한 것이다. 디자인 일보다 오히려, 이 타협점을 찾아가는 것이 훨씬 까다롭고 중요하다. 내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까도 마트에 다녀오면서 이것저것 생각을 했다. 마트에 가면서 색의 농도에 대해 뭐라나, 이러나저러나 색이 자연스럽고 예쁘게 들어가는 것은 역시 그러데이션뿐이다. 채도가 높으면 중간 채도의 색이 받쳐줘야 하고 그러다 보면 깊이가 생겨 화면에서 훨씬 풍부한 느낌이 든다.

 

빛의 방향

현실 세계에서 빛의 양에 따라 그림자의 정도에 따라서 하얀색의 경우에도 다양한 톤이 발생하고, 그 미세한 면적이 사람에게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디자인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실의 것들을 구현할 수 있게 되면 그것이 특별하게 느껴오는 것이다.

 

이미지 표현 방식

그러나, 사진과는 또 다른 이미지의 표현법이 있기에, 사진과 그림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진으로 낼 수 있는 선명한 느낌도 중요하지만, 좋지 않은 사진의 경우에는 구도나 불필요한 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어진다.

그러나, 그림은 계획하에 아름다움만 그려 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결과물이 사진에 비해서 보통 아름다운 것이다. 만약, 내가 포토그래퍼라면 멋진 사진을 찍을 능력이 없다면 디자인 작업으로 머릿속의 이미지를 구현해내는 것이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래나 저래나

어쨌거나, 창작의 고통을 마음껏 느끼는 중이다. 이 감정이 참 애매한데, 어쩔 때는 스릴 넘치고 즐거웠다가 어쩔 때는 다 때려치우고 싶을 만큼 절망적이고 미쳐버리는 것이다. 많은 창작가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면이기도 하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나 예술가라도 일반 사람들이 느끼는 창작의 고통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창작의 고통은 일반 사람들이 더 심히 느낄 확률이 높다. 아는 것도 없고 기준도 없는데, 기대치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완벽하게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까지 만들어낼 수 있는 예술가들은 일반적으로 창작의 고통보다 창작의 성과에 즐거움을 느낄 확률이 높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