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꽤나 좋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을 봤다. 위쳐(WITCHER)라는 작품인데, 내가 즐겨하는 게임과 유사성도 있었고, 왕좌의 게임과 같은 느낌도 있었던 작품이다. 하얀 늑대의 주인공, 폴란드 작가 안제이 사프코프스키의 판타지 소설 시리즈 위처가 넷플릭스로 나온 작품이다. 굉장히 재밌었다. 현재 시즌 1을 모두 봤고, 다음에 나오자마자 추가로 볼 예정이다. 이 작품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매거진 블로그에 담을 예정이다.
신년을 기다리면서 다소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는 요즘이다. 일에 대한 의욕이 확 줄어들고, 대신에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이유없이 그런 것은 아니고, 일이 한 번 꼬여버리니까 나의 루틴이 파괴되었다. 다른 사람 탓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자꾸 나를 보채는 사람들이 있었고, 나의 마음과 상황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나의 루틴은 파괴되어버린 것이다. 이 루틴을 복구하기까지는 생각보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말'이 그렇게 쉽게 오지 않는 것이다.
신년을 기다리며, 나를 헤아리는 말들을 떠올린다.
신년, 같은 말로 새해라고도 한다. 나는 새해라는 말 보다 신년이라는 말이 더 정감이 간다. 뭔가 더욱 전통적이고, 깊이가 있는 느낌이다. 새해라는 말은 자주 쓰이다보니까 안부인사같은 느낌이라면, 신념은 하나의 전통적인 일정을 의미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신년이 오고 있다. 곧 있으면 해가 바뀔 것이다. 2020년에는 2019년보다 훨씬 깔끔한 숫자로 정리가 되고 있다. 2020처럼 20이 반복이 되고 있다. 컴퓨터에서는 0과 1 그리고 이제는 2가 있다. 2020은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내 머릿속의 회로처럼 때로는 컴퓨터처럼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싶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신년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처럼, 멋지게 살아가고 있지가 않았다. 분명 문제가 있었고, 나는 결론을 지어야만 했다. 늘 외로워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을때에도 나는 그들에게 어떤 애정도 느끼지 못했다.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들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의 불안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나의 불안정이 오는 시작조차도 이해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결국은 나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을 받았으면서, 그것을 마땅히 해야하는 일로 치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인복이 없다고 해야할까, 인복이 있었는데 내가 외면했다고 해야할까, 어떻게 설명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세상에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 그들을 따라서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그러질 못했다.
위대한 서사가, 나의 글들이, 나의 생각들이, 나의 방식들이 그리고 지금까지 내가 만들고 앞으로 만들어 갈 환상들에 대해서 결코 지지않을 자신이 있었다. 조금 더 나를 녹이고, 나를 쥐여짜서 나는 분명 고결한 작품을 만들 수 있을거라고 나 스스로 위로하고,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도 나를 응원해주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나를 더 사랑해줘야만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하물며 가족이라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나는 늘 외로웠고, 나를 괴롭혔고, 나는 나로하여금 다른 사람들보다 뭔가 한 마디라도 더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이였다.
그들은 그저, 하루의 일상 중에서 그저 돈을 벌고, 친구들과 놀러가고, 데이트를 즐기고 그러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나는 그보다더 훨씬 더 무언가를 만들고 싶어했다. 어쩌면 나는 개발자이면서도 발명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때론 아티스트로, 때로는 기획자로 살아가고 싶기도 했다. 나의 기술들과 이론들이 정말 나만의 방식으로 구축이 된다면 분명 누군가는 그것에 감동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길거라고 여겼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걸 통해서 나는 어떤 만족도 느끼지 못했다. 그것은 단순히,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돈을 버는 방식에 대한 정보만을 원할 뿐, 내가 이것을 이뤄내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나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없듯이, 다른 사람도 결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이라도 그것은 흔하지 않고, 어쩌면 체념해야할 미래의 사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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