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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플랫폼의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

'내'가 플랫폼이 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전까지는 정보와 지식을 쌓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많은 비용을 들였으며, 아슬아슬한 인생을 살았다. 그 아슬아슬한 인생에 있어서도 선택지는 많았었고, 지금도 여전히 많다. 어떤 집단에 합류해서 일을 만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고 그게 나의 주도적인 선택으로 인해서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늘 생각이 많다. 매일매일 다양한 것들을 상상하며, 이 상상의 자양분이 되는 새로운 정보들을 습득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장치를 늘려나가는 중이다. 어떤 장치가 낡거나 오래되면 과감하게 다른 장치로 옮겨가거나 하는데, 때로는 우연히 좋은 사람들 통해서 좋은 정보를 얻거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전에는 사람과의 만남에 있어서 내가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어떤 계약을 체결하거나 혹은 새로운 일을 해야 할 때 항상 내가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었고, 지금은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내가 그때 그렇게 생각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렇게 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먼저 다가가는 것에 있어서 가장 큰 약점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평가'를 받는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선택에 있어서 책임은 온전히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끌어내는 방법 있다. 생각을 이끌어내는 과정 중에 하나는 사람이 주도권을 가지는 것이다. 이 주도권을 만드는 방법은 정말로 다양하다. 자신을 포장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고 내 주변 사람들을 과시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들은 대개 자신을 낮추고 다가오는 방법이 많기 때문에 실패로 끝날 확률이 훨씬 높다.

가장 좋은 방법으로는 동등한 위치에서 좋은 관계를 오래 하는 것이다. 그것을 따로 공부를 했든, 하지 않았든 별생각 없이 그런 관계가 되기도 하지만, 인지를 하는 것과 인지하지 않는 것은 커다란 간극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이 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대개 목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목적 가치에 따라서 접근을 했으니, 그 효용이 없어지면 사람을 과감하게 버린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너무도 많고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도 이러한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

이 내용을 알고 있다면 자신이 어떻게 플랫폼이 될 수 있는지, 그 상징적인 의미가 가져다주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것을 나처럼 생각하고 공부를 해야만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알지 못하더라도 이미 그것을 훌륭히 해낸 사람들도 있다. 나의 중학교 동창이 지금 그렇게 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