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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흔암리 유적과 청동기시대 토기문화의 전개

1. 개요

한반도에서 청동기문화는 어떻게 유입되고 변화, 발전하였을까? 그 과정을 증명하는 중요한 유적 중 하나가 바로 여주 흔암리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서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는 겹아가리토기와 동북 지역에서 확인되는 구멍무늬토기가 혼합된 형태의 토기들이 출토된다. 이러한 토기들은 흔암리 유적에서 처음 확인되었으며, 이를 우리는 흔암리식 토기라고 부른다.

진주 대평 어은지구 80호 주거지 출토 흔암리식 토기
진주 대평 어은지구 80호 주거지 출토 흔암리식 토기

흔암리 유적은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유역에 위치한 청동기시대 초기 마을 유적으로, 당시 서북한(평안도·황해도)과 동북한(함경도)의 문화가 한강 유역에서 융합되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는 한반도 남부 지역과 북부 지역 간의 활발한 교류를 증명하며, 청동기시대의 문화적 융합을 이해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2. 흔암리 유적 개요

흔암리 유적은 경기도 여주시 점동면에 위치하며, 여러 차례 조사 결과 총 16채의 집자리가 확인되었다. 이 마을은 해발 123m의 야산 경사면에 위치하며, L자형으로 경사지에 집을 지어 생활한 흔적이 남아 있다. 각 집자리 내부에는 화덕, 저장구덩이, 선반 등이 발견되어 당시에 농업을 기반으로 한 생활 양식을 엿볼 수 있다.

 

 

여주 흔암리 선사유적 항공사진, 2017 ©경기문화재연구원

 

흔암리 유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출토 유물은 토기이다. 흔히 청동기시대의 토기는 무늬가 없는 민무늬토기로 알려져 있지만, 이 유적에서 출토된 토기는 겹아가리토기구멍무늬토기의 특징을 모두 지닌 독특한 형태로, 당시 문화적 융합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토기들은 한반도 남부 지역까지 확산되어, 제주도에서도 그 흔적이 발견되고 있다.

겹아가리토기
겹아가리토기
구멍무늬토기
구멍무늬토기

 

또한, 흔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석기들도 다양하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간돌칼, 반달돌칼, 도끼, 화살촉 등이 있으며, 이러한 석기들은 당시 사람들이 농경과 사냥을 병행하며 생활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유적에서 출토된 불에 탄 쌀은 한반도 남부에서 청동기시대 벼농사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증거로 여겨진다.

 

화살촉

 

3. 청동기시대 토기의 흐름

청동기시대의 토기는 지역과 시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다. 특히 한반도에서 청동기시대 초기에 사용된 토기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는 달리 민무늬토기로 불리며, 주로 무늬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흔암리 유적에서는 예외적으로 무늬가 있는 토기들이 발견된다. 이러한 무늬 있는 토기의 대표적인 예로는 구멍무늬토기, 겹아가리토기, 짧은빗금무늬토기 등이 있다.

 

여주 흔암리 7호 주거지 수혈벽 및 토기출토 상태, 1997 ©서울대학교박물관

 

3.1. 토기의 발전 과정

청동기시대 초기의 토기는 덧띠무늬토기로, 이는 토기의 아가리 부분을 강화하기 위해 점토 띠를 붙여 제작된 것이다. 덧띠무늬토기는 주로 중국 동북지역에서 발견되며, 이러한 토기는 청동기시대 한반도에서도 발견되었다.

이후 서북부 지역에서 겹아가리토기, 동북부 지역에서 구멍무늬토기가 각각 발전하였다. 특히 한강 유역에서는 이 두 종류의 토기가 융합된 형태의 흔암리식 토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지역 간의 교류와 융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된다.

한반도 남부의 청동기시대 후기에는 송국리형 토기가 주를 이루며, 이는 주로 무늬가 없는 긴 항아리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토기는 청동기시대 말기에 중요한 사회적 변화를 상징하는 유물로 해석된다.

 

불에 탄 벼

 

4. 흔암리식 토기의 특징

흔암리 유적에서 출토된 흔암리식 토기는 한반도 청동기시대 토기문화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토기는 겹아가리토기와 구멍무늬토기가 융합된 형태로, 당시 서북부와 동북부 지역의 문화가 한반도 중부에서 어떻게 융합되고 발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겹아가리토기는 이중구연토기라고도 하며, 서북부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었다. 반면 구멍무늬토기는 동북부에서 많이 발견되는 형태로, 한반도 남부에서도 오랜 기간 사용되었다. 흔암리 유적에서는 이 두 가지 토기가 융합된 흔암리식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이를 통해 서북부와 동북부 지역의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구멍띠토기
구멍띠토기

흔암리식 토기는 청동기시대 토기의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이후 한반도 전역으로 퍼져 나가 다양한 지역에서 확인되었다. 이 토기의 발견은 당시 사람들이 지역 간 활발한 교류를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 나갔음을 시사한다.

 

5. 청동기시대 전기의 문화적 변화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토기의 발전뿐만 아니라, 사회적 변화도 눈에 띈다. 덧띠무늬토기가 주로 사용되던 초기와 달리, 전기에는 무덤과 청동칼이 등장하며 사회적 계층이 점차 형성되기 시작한다. 특히 고인돌이나 돌널무덤과 같은 무덤 문화는 청동기시대 전기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로, 당시 사람들이 권력과 지배 계층을 형성했음을 보여준다.

반달돌칼

무덤에서 발견된 청동칼은 군사력과 권력을 상징하는 유물로, 이를 통해 당시 지배층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청동칼은 주로 무덤에서 발견되었으나, 최근 청주 학평리 집자리에서 청동칼이 출토되면서, 청동기시대 초기의 집자리와 권력 구조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제시되고 있다.

 

6. 결론

여주 흔암리 유적은 청동기시대 한반도의 문화적 융합과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겹아가리토기와 구멍무늬토기의 융합은 서북부와 동북부 지역 간의 활발한 교류를 시사하며, 이러한 문화적 융합은 청동기시대 한반도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기여를 한다.

흔암리 유적을 통해 우리는 당시 사람들이 단순히 농업을 넘어, 다양한 지역 간의 문화 교류와 새로운 사회적 구조를 형성해 나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는 한반도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흔암리 유적은 그 과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 중 하나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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