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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사람들의 고인돌 무덤 - 펑청 둥산·시산 유적

고조선은 한국 역사상 최초의 국가로, 그 문화는 한반도뿐 아니라 중국 동북지역까지 널리 퍼졌습니다. 그 중 고조선 사람들이 남긴 대표적인 유적 중 하나가 고인돌입니다. 이 글에서는 중국 랴오닝성 펑청시의 둥산과 시산에 위치한 고인돌 유적을 중심으로, 그 역사적 의미와 발굴 내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펑청[鳳城] 둥산[東山] 고인돌 유적 전경
펑청[鳳城] 둥산[東山] 고인돌 유적 전경

 

1. 펑청 둥산·시산 유적의 위치와 발굴 과정

둥산 유적의 발굴

둥산 유적은 1983년 마을 주민들이 채석 작업을 하던 중 처음 발견되었습니다. 이후 1989년과 1992년에 걸쳐 33기의 고인돌이 조사되었습니다. 둥산 유적의 고인돌은 주로 산꼭대기와 능선 끝자락에 분포하고 있으며, 14기의 고인돌이 밀집되어 있는 산꼭대기 지역이 특히 중요한 발굴지입니다. 이 고인돌들은 약 5~7m 간격으로 3줄로 배열되어 있으며, 능선 아래쪽에는 19기의 고인돌이 부채꼴 모양으로 흩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지역은 파괴가 심해 조사 과정에서 많은 고인돌이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시산 유적의 발굴

시산 유적은 둥산에서 서쪽으로 약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1992년에 5기의 고인돌이 발굴되었습니다. 시산 유적의 고인돌들은 산 능선을 따라 1줄로 나란히 위치해 있으며, 대부분 남북 방향을 따르고 있습니다.

 

2. 고인돌의 축조 방식과 무덤방의 구조

고인돌 덮개돌의 중요성

고인돌의 덮개돌은 고인돌의 외형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둥산 유적의 고인돌 덮개돌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으며, 이는 유적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원으로 당시에 노동력과 운반 비용을 고려한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약 200cm, 두께는 40~50cm로 비교적 큰 편에 속하며, 평면 형태는 주로 네모꼴, 둥근꼴, 평행사변형 등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북방식 고인돌
남방식 고인돌
남방식 고인돌
고인돌 덮개돌
고인돌 덮개돌

 

무덤방의 구조

둥산과 시산의 고인돌은 굄돌이 없는 개석식(蓋石式)으로, 덮개돌 아래 약 50cm 깊이의 지하에 무덤방이 있습니다. 무덤방의 벽은 막돌과 판자돌을 2~3층 쌓아 만든 경우가 많으며, 일부는 흙벽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무덤방의 평면 구조는 긴 네모꼴이며, 바닥은 일부 고인돌에서 판자돌을 깔았으나, 맨바닥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무덤방은 주로 산의 자연 지형을 따라 북서쪽 또는 북동쪽으로 배치되었습니다.

 

개석식 고인돌 <무지석식(無支石式)> 또는 <놓인 형 고인돌> ①
개석식 고인돌 <무지석식(無支石式)> 또는 <놓인 형 고인돌> ①
개석식 고인돌 <무지석식(無支石式)> 또는 <놓인 형 고인돌> ②
개석식 고인돌 <무지석식(無支石式)> 또는 <놓인 형 고인돌> ②

 

딸린 널과 껴묻거리

둥산 19호와 시산 1호 고인돌에서는 무덤방 옆에 딸린 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딸린 널은 작은 돌로 만든 돌덧널이며, 껴묻거리들이 놓여 있었습니다. 둥산 19호에서는 돌도끼와 돌대롱, 시산 1호에서는 미송리형 토기가 출토되었습니다. 이는 고인돌 사회의 내세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3. 주검을 묻는 방식과 장례 의식

묻기 방식: 바로펴묻기와 굽혀묻기

둥산과 시산 유적에서 주검을 묻는 방식은 크게 바로펴묻기와 굽혀묻기로 나뉘었습니다. 바로펴묻기는 무덤방의 길이가 160cm 이상인 경우에 해당하며, 굽혀묻기는 100~130cm 정도의 짧은 무덤방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는 주검의 형태와 무덤방의 크기를 통해 유추된 결과입니다.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의 신석기인
부산 가덕도 장항 유적의 신석기인

화장 의식

둥산 1·8호와 시산 1호 고인돌에서는 화장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특히 시산 1호 고인돌의 무덤방 바닥에서는 불에 탄 흔적과 함께 많은 숯이 발견되어, 이곳에서 제자리 화장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화장은 주검을 처리하는 방법 중 하나로, 비용과 절차가 복잡하여 특별한 경우에만 행해졌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화장 의식은 고조선 사회의 장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4. 고인돌 유적에서의 제의 흔적

고인돌은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고대 사회의 제의 공간으로도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둥산 6·7호 고인돌의 무덤방과 주변에서는 토기 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깨뜨려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토기 조각들은 죽음을 극복하기 위한 제의 행위의 일환으로 해석됩니다.

 

5. 고인돌에서 출토된 유물들

둥산과 시산 유적의 고인돌에서는 토기, 석기, 치레걸이 등이 출토되었습니다. 출토된 유물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미송리형 토기입니다. 미송리형 토기는 고조선의 표지 유물로, 북한 지역과 중국 동북 지역에서 주로 발견됩니다. 이는 고조선의 문화가 펑청 지역까지 널리 퍼져 있음을 보여줍니다.

돌화살촉, 돌도끼, 갈돌, 돌칼, 숫돌, 홈자귀 등
▲ 청동기시대 추정 익산 석치고개유적 출토 석기 - 돌화살촉, 돌도끼, 갈돌, 돌칼, 숫돌, 홈자귀 등

또한, 출토된 석기 중에서는 돌도끼, 돌칼, 돌자귀 등이 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나무를 가공하거나 건축에 사용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6. 둥산·시산 고인돌의 역사적 의미

둥산과 시산 유적은 고조선 시기의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발견된 미송리형 토기와 화장 의식은 고조선 사람들의 생활상과 내세관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입니다. 고조선은 죽음 이후의 세계를 중요하게 여겼고, 이를 위해 많은 노동력을 들여 고인돌을 축조하였습니다.

미송리식 토기
미송리식 토기

또한, 둥산과 시산 유적의 고인돌은 중국 동북 지역에서 고조선 문화가 어떻게 퍼져나갔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고조선의 문화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동북지역까지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문화적 교류는 당시 사회의 발전과 연관이 깊습니다.

미송리식 토기는 비파형 동검과 함께 고조선을 대표하는 표지적 유물로, 이 유물의 분포범위가 곧 고조선의 영역이 된다.

결론

펑청의 둥산과 시산에 위치한 고인돌 유적은 고조선 사람들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유적을 통해 고조선의 장례 문화, 내세관, 그리고 그들이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고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남아 있는 이 고인돌 유적은, 앞으로도 고대 동아시아 사회의 복잡한 구조와 문화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