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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과 벼농사

울산 무거동 옥현유적의 소구획 논
울산 무거동 옥현유적의 소구획 논

 

1. 개요

청동기시대의 가을 벌판은 황금빛 벼가 가득한 풍경이었을까? 한반도에서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기는 신석기시대부터였으나, 벼농사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 중요한 농업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초기에는 수렵과 채집이 주요 생존 방식이었으나, 점차 농사를 통해 예측 가능한 식량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농업의 발달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 바로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이다. 이곳에서는 벼농사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작은 논들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현대의 넓은 평야에 펼쳐진 논과는 거리가 멀고,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빗물을 모아 만든 작은 규모의 논이었다.

 

2. 무거동 옥현 유적의 논

진주 대평 유적에서 청동기시대 밭이 확인된 것처럼,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에서는 논이 확인되었다. 1998년, 울산광역시 남구 무거동 일대의 나지막한 언덕 아래에서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논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 논은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천수답 형태였다.

 

무거동 옥현 유적의 논
무거동 옥현 유적의 논

 

유적에서는 언덕 위에 여러 채의 집자리가 있었고, 그 아래쪽으로는 물을 모아 논으로 흘려보내는 수로가 연결되어 있었다. 논의 규모는 1~3평 정도로 매우 작았으며, 빗물에 의존하는 구조였다. 현대의 대규모 관개 시설이 없는 당시에는 천수답 방식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받는 것이 어려웠고, 이러한 이유로 농사의 규모도 작았다.

조사된 논의 흔적을 통해 논둑과 수로, 도랑, 벼의 규산체(플랜트오팔) 분석 등을 통해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무거동 옥현 유적의 논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작은 물줄기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로 평가된다.

 

 

3. 한반도에서 벼농사의 시작

한반도에서 농경이 시작된 시기는 신석기시대 중기로,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에서 조·피 등의 잡곡과 농기구가 발견된 바 있다. 그러나 벼농사가 본격화된 것은 청동기시대에 이르러서였다.

하남 미사리, 부여 송국리, 진주 대평 등지에서 청동기시대 볍씨 자국이나 불에 탄 쌀이 발견된 것을 통해 벼농사가 청동기시대의 중요한 농업 활동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에서 발견된 논은 청동기시대부터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벼농사가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벼농사는 상대적으로 따뜻한 기후와 많은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한정된 지역에서만 가능했다. 중국의 역사서 『삼국지(三國志)』 위서 동이전(魏書 東夷傳)에는 삼한 지역이 오곡과 벼를 심기에 적합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청동기시대 이래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벼농사가 중요한 생업 활동이었음을 알 수 있다.

 

4. 왜 쌀인가?

벼농사가 중요한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쌀은 장기 보존이 가능하다. 쌀은 탄수화물이 풍부해 에너지 효율이 높고, 장기간 저장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둘째, 쌀은 좁은 땅에서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다. 사냥이나 목축은 넓은 땅이 필요하지만, 농사는 상대적으로 좁은 공간에서도 높은 생산성을 자랑한다. 셋째, 쌀은 연작 피해가 적다. 다른 작물에 비해 매년 재배해도 토양의 영양분 고갈이 덜하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한반도에서도 벼농사가 주된 농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으며, 벼농사는 사회의 정착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었다. 수확한 쌀을 보관하기 위해 고상 건물을 짓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방호 시설을 설치하는 등 벼농사는 당시 사회 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5. 세계사 속의 농경

세계사적으로 농경의 시작은 신석기시대의 시작과 일치한다. 서양에서는 고든 차일드(Gorden V Childe)가 농경의 등장을 '신석기 혁명'이라고 명명하며, 농경이 단순한 생업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삶의 전반적인 변화를 가져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농경의 발생 원인을 건조화된 날씨와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설명하였으며, 이러한 환경에서 농경과 가축화가 동시에 이루어졌다고 보았다.

그 이후로 많은 학자들이 농경의 기원과 인간 생활의 변화에 대해 연구를 이어갔으며, 농경이 사회경제적 경쟁이나 인구 증가 등과 연관이 있다는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다. 특히 농경의 시작을 가축화와 연결짓는 해석도 주목할 만하다. 초기 농경 사회에서는 곡물을 가축에게 먹이고, 인간은 그 가축을 통해 단백질을 섭취하는 방식으로 생활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6. 결론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은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이곳에서 발견된 작은 논은 빗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던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농업 활동을 보여주며, 벼농사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중요한 생업 방식으로 자리 잡았음을 입증한다. 쌀은 보관이 용이하고, 좁은 땅에서 높은 생산성을 제공하는 작물이었기 때문에 벼농사는 당시 사회의 경제적 기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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