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고령 장기리 암각화(高靈 場基里 岩刻畫)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위치한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보물 제605호로 지정되어 있다. 알터 마을 입구의 바위에 새겨진 이 암각화는 동심원, 십자형, 가면 모양 등을 특징으로 하며, 농경사회의 신앙과 제의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6m의 암벽에 새겨져 있으며, 근처에서 출토된 석기와 토기 등을 통해 청동기 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2. 암각화의 발견과 주변 환경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1971년에 처음 발견되었고, 발견 당시 ‘양전동 알터 암각화’로 불렸다.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천전리 암각화에 이어 세 번째로 발견된 한국의 암각화이다. 이곳의 바위에는 동심원 3점과 29점의 방패형 신상 그림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대개 신앙적, 주술적 의례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된다.
암각화는 회천이라는 하천이 흐르는 곳에서 가까운 바위에 새겨져 있는데, 이 회천이 주변 지형을 감싸고 흐르며 암각화가 위치한 ‘알터 마을’과 하천이 원래 가까웠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위치적 특성은 물가에 위치한 울주 반구대, 천전리 암각화와 유사하며, 물과 관련된 제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고령 지역에서 의례가 행해졌던 장소로 추정되며, 이후 1989년 영주 가흥동, 영일 칠포리, 경주 석장동 등 경상북도 여러 지역에서 비슷한 유형의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3. 동심원의 상징과 태양신 신앙
장기리 암각화의 주요 모티브는 여러 겹의 동심원이다. 이는 대개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청동기 시대의 태양 숭배와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양신을 숭배하던 고대 농경 사회에서 태양은 생명과 풍요의 원천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는 암각화의 동심원으로 표현되었다.
동심원은 주술적 의미에서 하늘과 사람을 잇는 매개체로서 기능하였으며, 이를 통해 사람들은 풍작과 풍요를 기원하였다. 또한, 동심원은 물과의 관계를 시사하는 요소로서, 물과 관련된 제의적 상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물과 태양은 모두 농경 사회에서 중요한 자원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이 결합된 장기리 암각화는 당시 농경 사회의 신앙적, 제의적 중심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4. 검파형 무늬와 샤먼 신앙
암각화에서 두드러지는 또 다른 요소는 검파형(劍把形, 칼자루 모양) 무늬이다. 검파형 무늬는 청동검이나 돌칼의 손잡이를 닮은 형태로, 이를 가면으로 해석하는 연구가 있다. 이 해석은 시베리아 연해주의 사카치 아리안 암각화와의 비교에서 비롯되었으며, 해당 암각화에서도 가면을 중심으로 빛줄기 모양의 직선이 둘러져 있는 특징이 나타난다.
장기리 암각화의 검파형 무늬도 이러한 가면과 연관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당시 제의를 주관한 샤먼의 얼굴을 상징했을 수 있다. 샤먼은 주술적 의식을 통해 신과 소통하는 인물로, 그의 얼굴이 암각화에 신성한 상징으로 남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5. 신화적 상징과 지모신(地母神) 신앙
고령 지역의 민간 전승과 신화에서도 장기리 암각화의 신성한 의미를 엿볼 수 있다. 특히, 가야산신 정견모주와 관련된 신화는 암각화가 단순한 그림이 아닌 종교적 신앙과 제사의 상징으로 작용했음을 나타낸다. 정견모주는 천신과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들이 대가야와 금관가야를 건국한 신화적 존재이다.
이러한 신화적 배경은 장기리 암각화가 가야산신 정견모주와 같은 여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일 가능성을 제시한다. 농경 사회에서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여신 숭배는 지모신(地母神) 신앙과 결부되며, 이는 장기리 암각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6. 암각화와 고대 신화의 연결고리
장기리 암각화의 동심원과 검파형 무늬는 청동기 시대의 농경 신앙과 물, 태양에 대한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함께 고대 신화에서 나타나는 여신 숭배와 물과의 관계는 장기리 암각화의 상징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준다.
특히 고구려의 하백(河伯) 신화, 신라의 알영(閼英), 가야의 허황옥(許黃玉) 신화 등에서 나타나는 물과 여신의 관계는 장기리 암각화의 상징적 의미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러한 신화적 요소들은 고대 사회에서 여신이 신성한 존재로 숭배되었음을 보여주며, 장기리 암각화가 그러한 숭배의 중심지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7. 결론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청동기 시대 농경 사회의 신앙과 의례, 그리고 신화적 상징을 담고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동심원은 태양과 물을 상징하며, 검파형 무늬는 샤먼의 신성한 존재를 암시한다. 이 모든 요소들이 결합된 장기리 암각화는 당시 사회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제단이자,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는 신앙의 중심지로 기능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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