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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갈동 유적과 거푸집에 대한 고찰

완주 갈동 유적과 거푸집
완주 갈동 1호 움무덤 거푸집 출토 상태

1. 서론: 거푸집과 무덤의 주인공

완주 갈동 유적에서 출토된 거푸집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을 던집니다. 그중 가장 큰 궁금증은, 무덤에 거푸집을 가지고 간 사람이 누구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청동기를 제작하던 장인이었을까요, 아니면 청동기 제작을 관리하던 고위층이었을까요? 무덤에 청동기 제작에 중요한 거푸집을 넣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풀기 위해서는 완주 갈동 유적의 발굴된 유물과 그 당시의 청동기 제작 과정, 그리고 사회적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2. 갈동 유적: 초기 철기시대의 무덤 유적

2.1 위치와 개요

완주 갈동 유적은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와 완주군 이서면의 경계에 위치한 초기 철기시대의 무덤 유적입니다. 해발 40m 내외의 구릉지에 자리한 이 유적은 남사면에 총 17기의 무덤이 분포하고 있으며, 각 무덤은 경사면을 따라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이 무덤들 중 일부는 내부에 널을 가지며, 창원 다호리 1호 무덤처럼 통나무로 만든 널과 경산 양지리 1호 무덤처럼 판자로 만든 널이 공존합니다.

 

잔무늬거울
잔무늬거울

 

2.2 1호 움무덤의 중요성

완주 갈동 유적에서 가장 주목받는 것은 1호 움무덤입니다. 이 무덤에서는 정식 발굴 조사를 통해 한국식 동검, 즉 세형동검의 거푸집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외에도 잔무늬거울, 청동화살촉, 유리구슬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특히 이곳에서 출토된 세형동검의 거푸집은 한국 청동기 문화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3. 갈동 1호 무덤에서 출토된 거푸집의 재질과 출처

3.1 거푸집의 구조와 재질

갈동 1호 움무덤에서 출토된 거푸집은 2점이지만, 새겨진 면으로 보면 1.5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점의 거푸집에는 세형동검 한 면만 새겨져 있고, 다른 한 점에는 세형동검 한 면과 꺾창 한 면이 새겨져 있습니다. 두 점의 거푸집은 크기가 조금 다른데, 각각 33.0×7.3×3.1cm와 31.9×7.9×2.3cm의 크기를 가집니다.

거푸집거푸집
거푸집

이 거푸집은 직접 분석된 바는 없지만, 인근 덕동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 끌의 거푸집과 재질 특성이 동일하게 보입니다. 분석 결과, 이 거푸집은 녹회색의 각섬석암으로 판명되었으며, 이 돌은 장수 지역의 장수읍 식천리 등지에서 채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점에서 거푸집의 제작에 쓰인 재료는 현지에서 채취된 돌일 가능성이 큽니다.

 

3.2 거푸집의 채굴지 논란

일부 연구자들은 이 거푸집이 활석으로 만들어졌으며, 완주 지역에 활석광산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조달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청동기 제작이 지역 내에서 자급자족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을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4. 금속의 기능과 상징성

4.1 금속의 강점과 차별성

금속은 나무나 돌에 비해 다양한 기능적 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리는 두드려 모양을 만들 수 있을 만큼 부드럽지만, 단단하지 않아 실용성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에 비소나 주석을 첨가하여 구리의 단단함을 높이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주석이 첨가된 청동은 비소보다 안전하며 단단한 도구를 만드는 데 적합했습니다.

4.2 재료 한계의 극복

금속의 가장 큰 장점은 재료의 크기에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돌로 만든 간돌칼은 원재료의 크기에 따라 도구의 크기가 제한되지만, 금속은 거푸집만 크게 만들면 재료를 녹여 부어 원하는 크기의 도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금속의 특성은 청동기 제작 기술이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5. 한반도에서 출토된 거푸집들

5.1 거푸집의 다양한 재질

한반도에서 출토된 청동기 거푸집들은 그 재질과 출처가 다양합니다.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출토된 도끼 거푸집은 천매암으로 만들어졌고, 숭실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영암 출토 거푸집들은 활석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완주 덕동 유적의 거푸집은 갈동 유적에서 출토된 것과 동일하게 각섬석암으로 추정됩니다.

5.2 정식 발굴된 유일한 무덤 출토품

현재까지 초기 철기시대의 거푸집이 정식 발굴된 무덤 출토품은 완주 갈동 1호 널무덤 출토품이 유일합니다. 이는 이 유적이 한국 청동기 시대 연구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6. 청동기의 제작 과정

6.1 재료의 채광과 배합

청동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리와 주석 등의 원료를 채광해야 합니다. 구리광산은 한반도 내에도 존재하지만, 주석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 수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채광된 원료는 도가니에 넣어 고온으로 녹여서 쇳물을 만들고, 이를 적당한 크기의 덩어리로 만듭니다. 이후 구리와 주석의 비율을 조절하여 필요한 도구를 제작합니다.

거푸집
거푸집

6.2 거푸집의 제작

거푸집을 만드는 방법에는 돌을 깎아 만든 방식과 흙이나 밀랍을 사용하는 방식이 있습니다. 갈동 유적에서 출토된 거푸집은 두 개의 돌을 합쳐 사용하는 방식으로, 이는 합범이라고 불립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푸집에 쇳물을 부어 청동기를 제작하게 되며, 이후 부서진 청동기는 녹여서 재활용하거나 재가공하여 사용됩니다.

 

7. 청동기 제작자는 기술자인가, 지배자인가?

7.1 거푸집을 무덤에 넣은 이유

완주 갈동 1호 널무덤에서 가장 큰 의문은 귀중한 거푸집을 왜 무덤에 넣었느냐는 점입니다. 이 거푸집은 흠도 없고 완벽한 상태였기 때문에,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어서 무덤에 넣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청동기에서 철기로의 전환기였던 그 당시 상황 속에서, 청동기 제작을 주도하던 기술자들이 철기 기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도구를 무덤에 함께 묻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7.2 무덤 주인의 신분

갈동 1호 무덤의 주인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는 청동기 제작 기술을 독점하던 기술자였고, 당시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청동기 제작이 쇠퇴하고 철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그는 과거의 기술과 함께 무덤에 거푸집을 묻고 역사 속에서 사라진 인물이 아닐까 추측할 수 있습니다.

 

8. 결론

완주 갈동 유적에서 출토된 거푸집은 당시 청동기 제작 기술과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이 유적을 통해 우리는 당시 청동기 제작자들이 어떤 위치에 있었으며, 그들이 청동기에서 철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귀중한 거푸집을 무덤에 넣은 이유는 그들이 단순한 기술자가 아닌 사회적, 정치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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