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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신풍 유적과 준왕의 남하

완주 신풍 가-31호 널무덤 출토 잔무늬거울
완주 신풍 가-31호 널무덤 출토 잔무늬거울

1. 개요

완주 신풍 유적은 한반도의 청동기 유물 중에서도 특히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는 유적으로, 그 중에서도 잔무늬거울이 대표적인 유물로 손꼽힌다. 이 거울은 거미줄처럼 촘촘한 무늬가 새겨져 있으며, 당시의 뛰어난 청동기 제작 기술을 엿볼 수 있게 한다. 한반도 서남부에서 주로 출토되는 이 잔무늬거울은 마한과 관련이 깊다고 여겨지며, 완주 신풍 유적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다수 발견되었다. 특히 이 유적은 잔무늬거울의 중심지로 꼽히며, 그 당시의 청동기 문화와 사회 구조를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2. 완주 신풍 유적의 위치와 발견

완주 신풍 유적은 전라북도 완주군 이서면 갈산리 일대에 위치한 나지막한 구릉에 있다. 이 유적은 가 지구와 나 지구로 나뉘어 있으며, 가 지구에는 57기, 나 지구에는 23기의 널무덤이 발견되었다. 가 지구의 무덤들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그 크기가 커지고 철기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많은 무덤이 조성되었음을 나타낸다. 또한 나 지구에서는 움무덤이 널무덤보다 더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당시의 사회적 계층과 관련된 무덤 양식을 보여준다.

특히 가 지구의 구릉 정상에 위치한 54호 널무덤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무덤으로, 장대 투겁 방울 한 쌍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구릉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사회적 계층의 분화를 나타내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다.

검은간토기
검은간토기

3. 신풍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

신풍 유적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대표적으로 덧띠토기, 검은간토기, 쇠뿔손잡이단지 등의 토기류와 함께 철기 및 청동기가 많이 발견되었다. 청동기 유물 중에는 세형동검, 잔무늬거울, 꺾창, 도끼, 새기개, 장대 투겁 방울 등이 있다. 특히 세형동검은 숫돌에 날을 갈지 않은 상태로 부장된 예가 있어 주목을 받았다. 이는 김해 회현동 독무덤이나 재령 고산리에서 출토된 청동검과 유사한 사례로, 당시 청동기 제작 및 사용 방법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쇠뿔손잡이단지
쇠뿔손잡이단지

잔무늬거울은 이 유적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유물 중 하나로, 총 10점이 발굴되었다. 이는 한 유적지에서 가장 많은 수의 잔무늬거울이 출토된 사례로, 신풍 유적이 잔무늬거울 제작 및 분배의 중심지였음을 시사한다. 이 거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무덤에 부장되었는데, 피장자의 머리 옆에 깨진 상태로 부장되거나 상면에 흩뿌려진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의례적 사용은 당시의 매장 문화와 의례적 행위와 관련이 있음을 나타낸다.

 

장대 투겁 방울장대 투겁 방울
장대 투겁 방울

 

4. 잔무늬거울의 발생과 특징

잔무늬거울은 다뉴세문경, 혹은 다뉴정문경이라고 불리며, 한반도 청동기의 대표적인 유물이다. '다뉴경'이라는 용어는 '다(多)'와 고리를 뜻하는 '뉴(鈕)', 거울을 뜻하는 '경(鏡)'이 합쳐진 말로, 고리가 많은 거울을 의미한다. 일반적인 중국 거울은 고리가 하나인 반면, 다뉴경은 2개에서 3개의 고리를 가진다. 다뉴경은 고리에 줄을 걸어 목에 걸거나 옷에 꿰매어 사용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번개무늬나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다.

완주 신풍 유적 출토 잔무늬 거울(초기철기시대)
완주 신풍 유적 출토 잔무늬 거울(초기철기시대)

기원전 8세기경 중국 동북 지역에서 번개무늬를 가진 다뉴뇌문경(多鈕雷文鏡)이 처음 만들어졌으며, 이를 기반으로 발전한 거친무늬거울과 잔무늬거울이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중요한 유물로 자리잡았다. 잔무늬거울은 주로 한반도와 일본에서 발견되며, 특히 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 가장 먼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잔무늬거울은 돌이 아닌 흙으로 만든 일회용 거푸집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는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에서 국보 제141호 잔무늬거울의 보존 처리를 통해 확인된 중요한 연구 성과 중 하나이다. 이처럼 잔무늬거울 제작자는 매우 정교한 기술을 사용했으며, 작은 부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제작한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5. 준왕의 남하와 신풍 유적

완주 신풍 유적은 잔무늬거울뿐만 아니라 청동기 제작과 관련된 다양한 유물이 출토된 곳으로, 준왕의 남하와 관련된 중요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기원전 194년경 고조선의 왕이었던 준왕이 남쪽으로 이주해 한왕(韓王)으로 불렸다는 기록이 전해지는데, 준왕이 남하하면서 고조선에서 사용하던 청동기와 관련된 문화도 함께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이 시기에 완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는 청동기 유물은 준왕의 세력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완주 신풍, 갈동, 덕동, 전주 원장동 등지에서 잔무늬거울과 관련된 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있을 수 있으며, 준왕의 남하와 함께 한반도 남부 지역에 새로운 청동기 문화가 확산되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6. 신풍 유적의 역사적 의의

완주 신풍 유적은 한반도 서남부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로서, 당시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상황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잔무늬거울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들은 이 지역이 고조선과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발전한 문화적 중심지였음을 증명한다. 특히 준왕의 남하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통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청동기 문화가 확산되고 정착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유적의 연구는 한반도 청동기 문화의 발전과 변천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며, 당시의 사회적 계층 구조와 매장 의례, 기술적 발전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 완주 신풍 유적은 한반도 청동기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연구와 발굴을 통해 그 역사적 가치가 더욱 부각될 것으로 기대된다.

 

7. 결론

완주 신풍 유적은 한반도 서남부 청동기 문화의 중심지로, 특히 잔무늬거울을 통해 그 시대의 뛰어난 청동기 제작 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준왕의 남하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은 이 지역이 당시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음을 시사하며, 신풍 유적은 한반도 청동기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유적이다. 앞으로도 신풍 유적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히 이루어지길 기대하며, 이를 통해 당시 사회와 문화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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