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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괴정동 유적과 이형동기

대전 괴정동 유적은 한반도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중요한 유적 중 하나로, 이곳에서 출토된 청동기들은 당대의 기술력과 함께 독특한 형태와 용도로 주목받고 있다. 특히, 대쪽모양 청동기, 방패모양 청동기, 나팔모양 청동기와 같은 이형동기(異形銅器)는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이들 청동기의 형태와 용도에 대한 연구는 청동기 시대의 정치, 사회, 제사 의식 등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대전 괴정동 무덤 출토 이형동기
대전 괴정동 무덤 출토 이형동기

 

대전 괴정동 유적의 발견과 의의

1967년, 대전 괴정동에서 우연히 무덤이 발견되었고, 그 안에서 다양한 청동기들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당시 정식 발굴 조사 없이 일부만이 조사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를 제공했다. 괴정동 유적에서 출토된 청동기들은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도구들로, 특히 '이형동기'라고 불리는 청동기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 무덤은 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널무덤(석관묘) 형태로, 주로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가진 개인에게 집중된 권력을 상징하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특히, 청동검, 거친무늬거울, 대쪽모양 청동기, 방패모양 청동기 등 청동기들은 단순한 무기나 생활 도구 이상의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괴정동 무덤의 구조와 출토품

괴정동 무덤의 구조는 나무널을 중심으로 돌을 쌓아 올린 형태로, 나무널의 남쪽 벽에서는 귀걸이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곱은옥이 발견되었다. 이는 머리 위치를 남쪽으로 두었음을 시사하며, 중앙에서는 청동검과 돌화살촉이 나와 사후 무덤 속에 전사로서의 상징적 의미가 담긴 유물을 함께 묻었음을 나타낸다.

특히, 발치 아래에서 발견된 대쪽모양 청동기, 방패모양 청동기, 둥근뚜껑모양 청동기 등은 그 형태가 매우 독특하고, 그 용도에 대해서도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이로 인해 이들 청동기는 ‘이형동기’라 불리며, 현재까지도 정확한 용도는 학계에서 연구 중에 있다. 또한, 이 무덤에서는 검은간토기와 덧띠토기 등의 토기류도 함께 출토되었는데, 이는 음식물을 묻은 흔적으로 볼 수 있다.

 

이형동기: 그 형태와 의미

이형동기는 문자 그대로 '특이한 형태의 청동기'를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대쪽모양 청동기, 방패모양 청동기, 둥근뚜껑모양 청동기 등이 있다. 이들 청동기는 대전 괴정동을 비롯해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등지에서 발견되었으며, 주로 서남한 지역을 중심으로 출토되어 마한 문화의 중요한 유물로 자리 잡았다.

이형동기의 용도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중국 심양의 정가와자 무덤에서 유사한 유물이 출토된 사례를 통해 제사나 의례에서 사용된 도구로 추정되고 있다. 나팔모양 청동기는 말의 머리를 장식하는 도구였을 가능성이 있으며, 방패모양 청동기와 어깨뼈모양 청동기는 무기나 장신구의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둥근뚜껑모양 청동기는 소리를 내는 악기로서 제사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쪽모양 청동기와 방패모양 청동기

대쪽모양 청동기는 주로 3점씩 한 쌍을 이루어 출토되는 것이 특징으로, 중국 내몽고 지역의 유물과 비교해 말의 머리를 장식하던 마면(馬面)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청동기가 한반도 남부에서도 말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무덤의 출토 상황과 연관지어 볼 때 권력자들이 사용하던 중요한 제사용구였을 가능성은 높다.

방패모양 청동기는 그 형태가 방패처럼 생겼으며, 뒷면에 고리가 있어 끈으로 매달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청동기는 둥근 구멍을 통해 소리를 내는 징이나 꽹과리와 같은 악기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이는 제사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형동기의 상징성과 문양

이형동기에는 다양한 기하학적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특히 사슴, 사람의 손바닥, 호랑이와 같은 상징적 이미지들이 주목된다. 예를 들어, 아산 남성리에서 출토된 대쪽모양 청동기에는 사람의 손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샤먼적 의례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손은 인간이 자신을 표현하는 가장 오래된 상징으로, 이러한 손바닥 문양은 당시의 종교적 의미나 제사의 상징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주에서 출토된 어깨뼈모양 청동기에는 사슴의 몸에 창이 박혀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례적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문양들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종교적, 주술적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당시 사람들이 청동기를 통해 신과의 소통을 시도했음을 보여준다.

 

이형동기의 연구와 그 변화

이형동기라는 용어는 원래 그 용도나 사용법을 알 수 없는 청동기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나 점차 연구가 진행되면서 이형동기는 제사와 같은 의례에 사용된 청동기로 재해석되었으며, 특히 청동기에 새겨진 문양들이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샤머니즘과의 관련성이 강조되었다.

중국 동북지방의 출토 사례를 바탕으로 보면, 이러한 청동기들은 고조선과의 관련성도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가와자 무덤에서 출토된 나팔모양 청동기나 둥근뚜껑모양 청동기 등이 고조선의 제사 의식에서 사용되었다는 점에서, 이형동기 역시 마한 지역에서 국가적인 제사에 사용된 중요한 도구로 추정된다.

 

이형동기 문양의 상징성과 농경문 청동기

이형동기에 새겨진 문양들은 모두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아산 남성리에서 출토된 대쪽모양 청동기에는 손바닥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샤먼의 상징으로 해석된다. 또한, 경주에서 출토된 어깨뼈모양 청동기에는 사슴과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사냥의 성공을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를 담고 있다.

농경문 청동기
농경문 청동기

가장 주목할 만한 이형동기 중 하나는 '농경문 청동기'로, 앞면과 뒷면에 각각 새와 농부가 그려져 있다. 새는 마을을 수호하는 상징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며, 농부는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을 나타낸다. 이는 고대 한반도에서의 농경 의례와 샤머니즘이 결합된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결론

대전 괴정동 유적에서 출토된 이형동기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선, 당대 사회의 정치적, 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특히, 이들 청동기에 새겨진 상징적 문양들은 제사 의식에서의 역할과 샤먼적 의미를 담고 있어,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삶과 신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