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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의 연대기

상흔의 연대기

서른넷. 시간의 풍화작용은 영혼의 지층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켜켜이 쌓인 기억의 퇴적층 아래, 억겁의 시간이 웅크리고 있다. 삶이라는 거대한 화로는 끊임없이 불타고, 그 속에서 우리는 단련된다. 혹은, 재로 스러지기도 한다. 한 번도 온전히 따뜻했던 적 없는 날들. 어둠 속에서 홀로 웅크린 시간들. 날카로운 바람이 스치는 텅 빈 벌판을 홀로 걸어온 시간들. 그 모든 시간이, 지금의 나를 빚었다.

어린 날의 기억은 희미한 수묵화처럼 번져 있다.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동자는, 거대한 세상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세상이라는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넘어지고, 부딪히며, 우리는 성장이라는 이름의 상처를 새겼다. 그 상처들은 아물지 않고, 영원히 우리 안에 남아, 삶의 지도를 그린다. 때로는 그 지도가 우리를 옭아매기도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흐르고, 우리는 전장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익숙해진 것은 포연과 핏빛 냄새, 그리고 스러져간 동료들의 메아리. 승리의 깃발은 허망하게 펄럭이고, 그 아래에는 슬픔과 고독만이 웅크리고 있다. 삶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너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가? 그리고 우리는 답을 찾지 못한 채,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

내 안의 훈장은 깊고 어두운 심연이다. 그곳에는 고통과 슬픔, 좌절과 분노,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던 의지가 함께 웅크리고 있다. 굳은살 박인 손으로 더듬는 기억의 파편들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심장을 찌른다. 하지만 그 고통 속에서 우리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한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작은 별처럼, 희망은 우리 안에서 조용히 타오른다.

이제, 고독한 항해가 시작된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 위에서, 우리는 작은 배 한 척에 몸을 싣는다. 나침반은 흔들리고, 지도는 찢겨져 나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우리는 오직 자신의 감각에 의지하여 나아가야 한다. 거대한 파도는 우리를 삼키려 하고, 차가운 바람은 뼈 속까지 스며든다. 하지만 우리는 멈출 수 없다. 멈추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라는 것을 알기에.

가끔, 문득, 깊은 심연에서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안식이라는 이름의 달콤한 유혹.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 안식은 영원한 침묵이라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다시 일어선다. 비틀거리며,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사색은 메마른 대지를 적시는 단비와 같다. 지난날의 그림자를 어루만지며, 우리는 내일의 풍경을 상상한다. 후회와 반성, 그리고 희망이 뒤섞인 혼돈 속에서, 새로운 길이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그 길은 험난하고 고독하지만,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기에.

내 안의 목소리는 폭풍 속에서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처럼, 묵직하게 울려 퍼진다. “일어나라, 걸어가라, 싸워라.” 낡은 갑옷을 다시 걸치고, 우리는 다시 전장으로 향한다. 우리의 삶은, 아직 끝나지 않은 서사시. 침묵과 고독, 고통과 희망, 그리고 끊임없는 투쟁으로 이루어진 장대한 이야기. 이 이야기가, 당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닿기를. 그리고 당신에게 작은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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