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람
한국에 태어나서 필수교육 과정을 밟고 이제 대학 졸업장을 따고 활동하고 있는 수많은 젊은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사람은 사유하는 동물이라고도 한다.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한다. 20세기에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세상은 정말 급격한 변화를 거쳐왔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나이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 세상을 착취 1의 역사라고 부르고 싶다. 2
나카타니 다케시(中谷 武)에 따르면 (3) 기계화와 오토메이션의 진전에 의해서도 착취 명제의 유효성은 상실되지 않는다. 기계화가 가령 완전히 노동을 몰아내는 극단적인 경우에는 물론 노동 가치는 의미를 잃는다.
그러나 기계화에 의해 기계의 유지관리와 관계되는 노동업무는 늘어날지언정 없어지는 일은 없다. 노동의 필요성이 없어지지 않는 한에서 기계화는 노동효율을 높일 뿐으로 착취 명제는 성립한다.
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 말을 현대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쉽게 적용한다면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나와 비슷한, 나와 비슷한 나이에 고민하고 있는 것을 나 역시도 고민했고 나는 열심히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하루의 시간 대부분을 사용하고 있다.
1. 태생
태어났을 때부터 부자로 태어났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욱 많다. 모든 사람들이 부의 평등을 가질 수는 없다. 태어났을 때부터 불평등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개인의 노력에 따라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쓰는 이 글은 조금은 더 가볍고 가깝게 느껴질 수 있는 우리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일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의 절반을 사용한다. 작은 노동으로도 가치 있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노동이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는 교과서에 나올 법한 이야기다.
나는 그 실체를 알고 싶었다. 내가 똑같이 노동을 해서 부자가 될 수 있을까? 아니, 적어도 돈 걱정하지 않으면서 적당하게라도 살아갈 수 있을까? 내가 바라본 미래는 결코 없었다.
계급이 존재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부의 격차는 멀어지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착취란, 계급사회에서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이 행하는 노동, 따라서 노동 생산물을 합법적인 동시에 강제적으로 취득하는 것이라고 했다.
2. 현대 사회
그렇다면 현대 사회는 어떨까, 나는 위 정의가 현대사회를 더욱 잘 묘사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회사를 다니고 급여를 받는다. 합법적인 것이다. 누가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자유를 얻는 것과 동시에 시간적 자유를 얻기를 바란다.
기술 우선주의는 아니지만 현대사회에서 기술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콘텐츠를 구성하는 것도 또 하나의 기술이며, 다양한 웹서비스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것도 기술이다. IT기업이 세상의 주가 되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 IT기술을 주도하는 기업들이 세상의 부를 쟁취한다. 부는 곧 권력이자, 힘이기도 하다.
돈이 없는 사람은 힘이 없다. 돈이 없어도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투쟁의 역사에서 평화롭기만 한 세상을 바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이기적인 동물로서 인식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추구권을 이행할 수 있으려면 그에 맞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
3. 우리나라 교육
우리나라의 교육은 나름대로 잘 갖춰져 있으나, 핵심적인 사유 방식을 채택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정말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살면서 필요한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다른 나라보다 적다고 생각한다.
물론 개발도상국에 비하면 축복받은 나라임에는 틀림없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만약,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라면 한국사람들은 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 것이다.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얻기 위해서 아직도 부족한 것이 많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각자의 인생을 제대로 선택할 수 있게 가치 있는 정보를 제공하며, 기회의 평등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을 하고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혹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끊임없이 일을 한다. 사람을 일을 하기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은 따로 있을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들이 해내는 것들, 세상이 행복하고 즐거운 곳이라는 느낌.
그런 것들을 갖추기 위해서는 착취의 역사를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착취라는 말보다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과거의 어른들이 실패했든, 그 책임이 현재 우리에게 다가왔든 간에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면 변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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