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늘 불편하다.
웃으며 이야기하는 것,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은 모두가 불편해한다. 진실을 이야기할 때는 그만큼의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을 때, 한 발짝 뒤로 돌아갈 수 없을 때 진실을 이야기해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진실을 불편해한다. 역사왜곡, 특정 정당 지지 등 자신의 신념이 깨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때로는 나에 대한 진실을 이야기할 때, 당연히 불편해할 수 있다. 만약에 그 진실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면 어느 누가 나서서 진실을 이야기할까, 정치인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한 개인이 하기에는 영향력이 없다.
어느 정도 알려진 사람이거나 연예인 및 공인의 경우에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진실은 묻혀간다. 사람은 참 간악하다. 같은 말인 간악(侃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간악한 사람이 될 것인지, 간악(侃諤)한 사람이 될 것인지는 스스로의 결정에 달렸다. 그러나, 작은 진실로는 모두가 간악한 사람이 되었다. 모두 바른말을 하진 않는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하 같다. 나에게 특정한 위험부담이 없을 때, 혹은 간과할 때, 나에게 충분한 기대이익이 발생했을 때, 혹은 그에 부합하는 신념을 갖췄을 때다. 신념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믿는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은 그만큼 실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에 기대를 했었던 것일까.
돈이 곧 자유다.
'돈이 곧 자유다.'라는 말, 속물적이지만 거진 사실에 가깝다.
실제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서 많은 자유를 얻는다. 내가 무언가를 가질 수 있는 여건, 내가 원하는 곳에서 잘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다.
돈에 국한된 작은 자유를 경제적 자유라고 하지만, 사람이 살아가면 거의 대부분 경제적 자유를 목표로 살아간다. 어쩌면, 돈이 곧 사람의 인생을 대변하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이것을 모두가 불편한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실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유를 얻을 확률이 높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 가진 힘이다. 진실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굳이 진실을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럴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공공의 이익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가치가 없을지도 모른다.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더 가치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은 개인의 이익을 우선시한다. 즉,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이 불편한 이유다. 진실에서 멀어지면 종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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