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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7. 20. 02:58

나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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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며칠 전부터 쓰고 싶었던 주제다. 다만, 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미루고 또 미루다가 지금은 써야 할 것 같은 내용이라 지금 이 시간을 사용한다. 일이라는 핑계로 그동안 나에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을 한다. 일기를 쓰거나, 에세이를 쓰는 것은 사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내가 쓰고 싶을 때 쓰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이 시간만큼은 다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나의 반성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시간이다.

나는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잘나지도 않았고, 돈이 많지도 않고, 그렇다고 착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을 수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잠을 줄여가며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년 동안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되돌아보면 낭비된 시간이 너무 많았으므로 어느 정도는 충분히 후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기보다는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참을 수 있을 때 참지 않고 노력할 수 있을 때, 노력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내 상상 속에서 그려지곤 한다. 그것을 나는 어쩔 수 없이, '후회'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졌는지에 대한 거창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열정이 넘쳤던 과거의 청년은 충분히 그랬겠지만, 지금의 나는 뭔가 많이 달라졌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또한, 예전에 비해 훨씬 욕심이 많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든 좋으니, 지금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고맙게 여기고 차라리 일을 하다가 죽어버려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하게 되는 것이다. 예전의 나는 뭔가 하고 싶은 것들도 많았고 사치를 부리거나 비현실적인 꿈을 꾸는 경우가 많았으나, 지금은 나를 너무나도 쉽게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몇 번이고 다짐을 하게 된다. 그 다짐의 내용은 이와 같다. 매일 내게 할당된 하루의 시간을 보낼 때, 온전히 그 시간을 의미 있게 활용하고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이 그나마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의 쓸모를 입증하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때론 목이 아프거나 피로가 몰려와도 그 생각을 하게 되면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다. 그것은 결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오히려, 그것은 희망이었다. 나는 그것을 활용해서 다시 각성하는 모습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 나름대로의 전략적인 기술로 활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의 쓸모라는 보잘것없는 에필로그는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몇 가지 궁금한 것이 생긴다. 하루의 시간을 무엇을 하며 보낼 것이고, 무엇을 알아가고 싶은지에 대한 내용이다. 매일 사람은 어떤 정보들을 습득하면서 그것을 가공해 새로운 시도를 한다. 인생의 연속성이 빛나는 순간이다. 그렇게 새로운 경험은 또 새로운 경험을 낳고,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낳는다. 그것은 스스로 상상해서 일어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말을 들으면 또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한 상황들을 자주 연출하기 위해서 다양한 수단을 활용하기도 하는데, 단기적으로 나에게 의미 있는 방법들을 찾은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를 돈으로 표현했을 때, 내가 내 자신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을 때야 말로 내게 많은 돈이 들어올 것임을 안다. 결코 지금은 나를 나로서 인정할 수 없고, 불 완정 한 존재로써만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완전함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것을 많은 사람들이 때론 '갈망한다'라고 표현을 한다. 즉, 나는 뭔가를 더 알기를 원하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은 제한적이며 사람의 관계는 깊게 유지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느 정도 적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이드라인은 이미 세상에 충분히 알려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은 그런 가이드북을 보고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나 조차도 때론 그것이 내 생각처럼 여겨질 때가 있으나, 살피고 보면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고스란히 인용한 것에 불과했다. 그것은 매우 불행한 것이다. 내가 내 생각에 평가를 내릴 수 없다는 것은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쓸모를 입증하기에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을 의미한다.